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⑳] 애기아빠 규민이의 명랑 사회복무요원 체험기

Written by. 이규민   입력 : 2017-09-21 오전 9:54:11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나라의 부름을 받고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곧 정든 이곳을 떠나야 한다니 시원섭섭하다. 나는 복무 중에 결혼을 했다. 지금의 아내는 아는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연애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우리는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서로 평생의 동반자, 부모가 되기로 약속을 하고 양쪽 부모님께 허락을 받았다. 그 후 빠르게 결혼식도 올렸고 나의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시작할 당시엔 생각지도 못 했던 일들을 하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어린나이에 결혼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서 평소에 했던 말투와 행동 그리고 옷 입는 것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쓰며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선 결혼하고 조금 달라진 것 같다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그런 칭찬을 듣고 나니 계속 듣고 싶어서 행동도 일부러 더 잘 보이게 신경 쓰고 그런 노력들이 나를 한층 더 성숙하고 철들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7년 1월 20일 아들, 이도윤이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니 제일 큰 걱정거리가 경제적인 것이었다. 내 신분도 사회복무요원이라 아르바이트도 힘들고 겸직허가를 받으려고도 해봤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사회복무요원 월급과 부모님의 도움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하지만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이 죄송스러워 최소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되도록 사회복무요원 월급으로 해결했다.

 한 달 월급 40만원도 채 안되지만 생활비 조금을 빼곤 아이용품을 사는데 사용했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혼자였다면 술, 담배로 다 쓰일 돈을 내 아이를 위해 많지는 않지만 쓸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뿌듯했다. 복무기간은 천생배필을 만나 미래를 약속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도윤이도 얻게 돼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머금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생소한 것들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느끼며 하나하나 나의 것으로 채웠다는 뿌듯함이 전율로 다가온다.

생애 첫 훈련소 교육...전우애를 느끼다!

 2015년 6월 1일, 증평에 있는 37사단 충용부대 4중대 1-3-31 훈련병으로 입소했다. 입소 전, 함께 생활하게 될 생활관 친구들은 어떨지, 내가 잘 적응하고 훈련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비록 현역은 아닐지라도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내딛는 첫걸음이라 떨리는 마음을 무던히 진정시키며 훈련소에 입소했다.

 군복을 받아들고 물품을 전달받으며,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색하게 마주앉아 묵묵히 밥을 먹었다. 사격, 행군, 화생방 등 훈련소에서 받은 훈련들은 생애 첫 경험으로 생소했고, 특히 사격은 정말 떨렸다. 생전 처음 접해본 총은 예상외로 상당히 무거웠고, 소리 또한 엄청 컸다. 플러그를 낀 상태에서도 귀가 아플 정도였다.

 현역에 비해 훈련기간이 짧아서인지 사격은 며칠밖에 훈련하지 않았다. 훈련 초반에는 커다란 총소리에 지레 겁을 먹고 총이라는 무기 자체로서도 무척 겁이 나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점점 그 소리에 익숙해지고 실력도 나아지니 사격훈련이 무척 재미나게 느껴졌는데, 막상 끝난다고 하니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잔뜩 들기도 했다. 한편, 행군은 허리디스크로 부득이하게 열외가 돼 참가하지 못했다.

 생활관에서 함께 하는 친구들 모두 참가하는데, 혼자만 제외가 되니 속상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행군이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이 또한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일상생활로 복귀한 후엔 경험해볼 수 없는 값진 경험일 것이기에 그러했으리라.

 돌이켜 생각해 보면, 훈련소 생활 중 가장 소중하고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바로 함께 동고동락했던 생활관 친구들이자 ‘전우’들이다. 전우라는 말이 어찌 보면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4주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함께 훈련을 받고 웃고 떠들며 보낼 수 있었던 친구들이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다.

 정말 괜히 ‘전우’, ‘전우’하고 애틋하게 부르는 게 아닌 것 같다. 사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3년 동안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나눠보지 못했던 친구들도 있었고 말은 했어도 친구라 부르기 어색했던 동창들도 있었다. 그러나 훈련소에서는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고 어디에 사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과도 급격하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군대라는 사회와 격리된 공간에서 다 같이 힘들고 고된 훈련을 받으며 서로 의지하고 함께 생활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같은 또래이지만 현역으로 복무하면서 우리와 같은 훈련병들을 한 달에 한 번씩 맡아 교육시키는 조교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 어려운 훈련을 군더더기나 실수 없이 완벽하게 시범을 보이는 모습이 전문가처럼 보였고, 그렇게 되기까지 겪었을 고난과 피나는 노력이 간접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4주간의 훈련소 생활에서 많은 것을 경험했고 배웠으며 몸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수료한 내 자신이 스스로 대견스러웠고,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다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얻었다. 비록 보충역이라 많은 훈련을 받지는 못해 아쉬웠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건강한 몸으로 다시 한 번 훈련을 제대로 받아보고 싶다.

사회복무 첫 배치 ‘문성휴양림’...서비스를 배우다!

 4주간 훈련을 마치고 충주시청 내 산림녹지과로 배치 받았고, 과에서 관리하고 있는 ‘문성휴양림’이란 휴양시설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휴양림에서 시설관리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근무지 특성상 주로 산에서 근무했다. 등산객이나 숙박 손님들이 휴양시설을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일을 했다. 집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수도 및 변기 호스 바꾸기, 전구 갈아 끼우기 등 각종 실생활에서 하는 소소한 것들을 배워서 했다.

 처음엔 어렵기도 하고 해보지 않은 것이라 힘들고 잘 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손에 익어 한결 수월하게 해냈고 일도 점차 쉽게 느껴졌다. 휴양림에서 이런 일을 배우고 하다 보니 집에서도 수시로 갈아야 하는 전구나 호스 같은 것들은 이젠 내가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거뜬히 해낼 수 있게 됐다.

 솔직히 예전엔 언제나 아버지께서 해주셨기에 그저 그런가보다 하며 어려움과 고마움을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사회복무를 하면서 경험하고 나니 집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하고 뿌듯했다. 그리고 휴양림에 머무른 손님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업무 중 하나였다. 퇴실한 방을 치우러 가보면 재활용도 잘 하고 정리도 깔끔하게 하고 가는 분들이 많이 있는 반면, 재활용은커녕 정리도 안 하고 가는 손님도 많았다.

 쓰레기를 치우며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되돌아 생각해보니 분명 나도 어딘가에 놀러 가서는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고 정리도 안 하고 그냥 왔던 사람 중 한 명이었기에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로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쓰레기를 버릴 때는 귀찮더라도 한 번 더 쓰레기통을 찾아서 버리려했고 깨끗하게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분리수거를 하고 정리도 최대한 하려고 노력 중이다.

 휴양림에서 근무하며 느낀 것은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분들의 어려움과 수고로움이다. 손님들이 불편한 것이 있으면 즉시 해결해줘야 하고 손님들 앞에선 행동도 바르게 해야 했다. 이것은 비단 내가 사회복무요원 신분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소집해제 후 직장을 다니면서 언젠가는 서비스직을 하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의 경험을 잘 새기고 생활한다면 나중에 어떤 일에 종사하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휴양림에서 제일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일은 수영장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여름철엔 수영장을 이용하는 손님이 많았다. 우리는 손님이 다 돌아간 후에 수영장을 청소하며 물놀이를 하곤 했다. 물 깊이는 겨우 무릎 정도였지만, 청소를 하며 한여름에 시원한 물에서 잠시나마 놀 수 있어서 위안을 받았고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문성휴양림에는 목재체험 프로그램과 짚라인, 오토캠핑장이 마련돼 있다. 사실 충주에 살면서도 그런 근사한 것들이 있었는지 잘 몰랐다. 근무 중이라 미처 해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소집해제하고 오는 여름에는 가족들과 함께 휴양림으로 캠핑과 목재체험을 즐기러 가야겠다. 이렇게 많은 것을 배우고 즐거웠던 7개월 동안의 휴양림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나는 충주시청 내 홍보담당관실로 옮기게 됐다.
사회복무 새로운 시작 ‘홍보담당관실’...사회인의 자세를 배우다!

 내가 근무하게 된 홍보담당관실은 홍보팀, 보도팀 이렇게 두 개의 팀으로 나누어져 있다. 홍보팀은 시정 홍보계획 수립, 시정소식지 월간예성 발간, 고시·공고 및 게시판 관리, 시보제작 발간, 정기간행물 신고 관리, 언론사 시정광고, 사진·영상 촬영 및 방송장비 지원, SNS 운영 등의 업무를 맡고 있으며, 보도팀은 보도자료 작성 및 배포, 인터뷰·대담·특별기고 작성 및 지원, 정례 간담회 운영, 보도자료 스크랩 및 방송 모니터링 등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홍보실에서 주로 옛날 사진을 스캔하고 정리하는 업무를 했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충주시의 과거 모습은 어땠을까 하고 궁금해 하며 옛날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적이 많았지만, 사진이나 영상을 구할 수 없어 확인해 볼 수 없었다. 그런데 홍보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옛 시정사진을 스캔하며 충주시의 옛날 모습을 다양하게 볼 수 있어서 무척 신기하고 즐거웠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께 많이 여쭤보긴 했으나 상상이 잘 되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바라본 옛 충주시내의 모습은 정말 상상 그 이상으로 신기하고 놀라웠다.

  유년시절 나가서 뛰어놀던 시내 거리와 건물들은 사진 속에서는 휑하게 사라져버렸고, 차도인지 인도인지도 정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 텅 빈 거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건물들로 높고 꽉 찬 거리의 모습만 봐왔기 때문에 사진 속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며 생활했을지는 사진만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옛 시정사진을 스캔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의 역사를 생각해보고 또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무척 뜻 깊고 새로웠다.

 또 홍보실에서 내가 했던 업무 중에는 매월마다 시정소식지인 월간예성의 배포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월간예성은 충주시에서 발간하는 시정소식지인데 전에는 월간예성이란 소식지가 집에 오는지, 충주시에서 그런 것을 발간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홍보실에서 직접 작업을 하다 보니 친근하게 느껴졌고 충주시정에도 보다 많은 관심도 갖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야외가 아닌 사무실에서 처음 복무하게 되어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사무실은 휴양림과는 다르게 앉아서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초반에는 적응하기가 다소 힘들었다. 자리에 앉아서 많이 졸기도 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담당 주사님께 혼도 많이 났다. 처음엔 내가 싫어서 그런가 하고 오해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게 혼내시는 말씀들은 나중에 복무가 끝나고 사회에 나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지금처럼 하게 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진심어린 충고와 조언이었던 것을 알게 됐다.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려 무던히도 애쓰고 돌봐준 그 분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린다.

 담당주사님뿐만 아니라 과장님, 팀장님, 다른 주사님들 모두 형, 누나, 이모, 삼촌처럼 따뜻하게 챙겨주고 편안하게 잘 대해주셨다. 정말 처음 사무실로 배치됐을 때 했던 걱정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잘해주셨다. 이곳에서 복무 중에 결혼을 해 가정도 꾸리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을 때도 진심으로 기뻐해주시고 진심어린 조언들을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그리고 과회식이나 주요행사 때에도 꼼꼼히 챙겨주고 얼마 전에는 봄맞이 겸 다 같이 중앙탑공원으로 피크닉도 다녀왔다. 이제 소집해제가 한 달 조금 넘게 남았는데, 홍보실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은 것 같다. 내가 언제 또 관공서에서 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만약 다시 하게 된다면 지금 이 사무실, 홍보담당관실 주사님들과 함께 다시 일하고 싶을 만큼 너무 행복하다. 남은 기간 동안 누가 되는 일 없이 열심히 최선을 다해 복무하겠다.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편견과 자긍심

 사실 처음 병역판정검사를 받고 4급 판정을 받았을 때 주위에서도 그랬고 나 또한 사회복무요원은 정말 편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현역 친구들은 무시 아닌 무시를 했지만 나도 그게 사실인 줄 알고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편견은 누가 어떻게 복무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가 힘들게 복무를 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요양원이나 복지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배로 고생하고 힘들게 근무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복무요원들이 지원하고 있는 업무들은 무척 다양하고 일의 강도와 어려움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므로 사회복무요원 업무가 쉽다고 단정할 수 없다.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편견은 복무요원 중 몇몇이 근무를 태만히 했거나 보충역 몇몇이 몸이 아프다는 것과 집에서 다닌다는 것을 이용해 밤새 놀고 다음날 병가나 연가를 써버리는 무책임한 행동을 해서 생긴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러한 일이 절대 없다고 거짓을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모든 사회복무요원들이 쉽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제는 남들이 선뜻 나서기 힘든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이 있구나 하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솔직히 나 자신도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백 퍼센트 잘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본분을 준수하며 성실히 잘 수행해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복무요원들 각자가 나 자신이 사회복무요원 전체를 대변한다는 마음자세로 모두들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근무했으면 좋겠다.

 힘든 훈련을 함께 하며 우정을 나눴던 전우들, 예비 사회인이 갖춰야 할 덕목과 자세를 가르쳐주신 가족 같은 공직자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규민 / 충주시청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1.1.24 일요일
핫클릭 뉴스
포토뉴스 더보기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장병 급식 질 높이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기대하며
요즘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부대별로 개설된 밴드를 통해 아..
깜짝뉴스 더보기
밤마다 찾아오는 불청객…‘불면증’ 예방하려면?
현대인의 발병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질병인 ‘불면증&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