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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나는 다시 내가 되었습니다’(장려상)

Written by. 강경석   입력 : 2019-11-19 오전 9: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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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정말 잘하고 싶었다. 내가 무사히 전역하기를 바라는 가족과 친구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부대에서 정말 열심히 생활했다. 추운 겨울 훈련소에서도 후반기 교육에서도 감투를 쓰고 훈련과 주특기 공부에 노력을 다했다. 훈련병과 교육생 시절 모든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여러 상장을 들고 촉망받는 신병이 되어 철원에 있는 부대로 전입을 갔다. 그리고 상병으로 진급하던 달, 난 사회복무요원이 되어 다시 사회로 나왔다."

 저는 현역 군인이었습니다. 훈련소를 마치고 후반기 교육을 받던 포병 학교에서 팔을 다쳤습니다. 좋은 성적을 유지해 표창을 받고 싶은 마음에 다친 사실을 즉시 알리지 않았습니다. 자대에 전입 가서는 나쁜 첫 인상을 보일까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다친 팔을 부여잡고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렇게 통증을 참아오다 첫 휴가 당시 민간병원에서 골절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루 빨리 부원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더욱 무리하였고, 3주 정도 깁스를 하면 나을 것이라는 팔은 5개월 이후 인대와 연골에 손상이 와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수술 후 팔은 정상적인 군 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었습니다. 재활과 요양을 위해 군 병원에 입원한 두 달 동안 정신적으로 약해졌고, 스트레스와 불면증으로 체중도 많이 감소했습니다. 퇴원 후 군 생활이 더 이상은 힘들다는 의사를 행정보급관님에게 말씀드리고 중대장님, 대대장님, 연대장님 차례로 면담 후 현역 복무 부적합 심사를 진행하였습니다. 힘든 기억이 많지만, 저를 도와주시고 함께 아파해 주신 분들 덕분에 좋은 기억도 있습니다. 심사를 진행하던 분들은 제가 겪었던 일들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표하시며, 전역 후 회복이 잘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사회복무요원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걸음을 기다리던 시간

 전역 후 다시 한 차례 수술을 받고 사회복무요원 소집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5개월이 흘러 사회복무연수센터에서 기본교육을 받고 사회복무 요원이 되어 병역의무의 두 번째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저의 근무지는 행정복지센터였습니다. 교육을 받을 당시 타 행정복지 센터에서 근무하던 친구에게 업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었지만, 막상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같이 일하게 될 분들은 좋은 분들인지 걱정이 돼 푸른 하늘도 우중충하게 보이고 제 시야에서 모든 배경은 회색빛으로 변했습니다. 저의 담당 주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담당 주사님의 소개로 행정복지센터의 직원분들과 첫인사를 하였습니다. 직원분들의 따뜻한 미소와 환대에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고 이런 좋은 분들과 함께라면 새로운 시작이 수월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마음에 자라났습니다.

 다양한 일들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행정복지센터 소속 사회복무요원이 되었습니다. 근무지에서 사회 복무요원은 혼자라, 전 다양한 일들을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독거 어르신들을 상대로 진행하는 행사를 도와 김장을 하고 노인정으로 야채 배달을 하러 가기도 했습니다. 쌀과 라면 상자를 나르기도 하고 홍수나 침수를 대비해 양수기를 점검하고 반출하기도 했습니다. 민방위 훈련 기간에는 통지서를 배부하고 훈련 참석 수령증을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봄과 여름에는 꽃이 담긴 화분을 나르며 심기도 하고 어린이들을 상대로 행정복지센터 옥상에서 일일 텃밭 체험을 진행하며 상추 따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일 체험 선생님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민방위, 청소 및 재난업무를 담당하는 주사님이 저의 담당자이기 때문에 주로 그 업무들을 보조하였습니다. 민방위 훈련 기간이나 장마, 폭설 기간을 제외하면 청소 민원 처리 업무가 제일 많았습니다. 부평구에서 제일 번화가인 구역이 관내이기 때문에 청소 민원이 많은 편인데 무단 투기 민원이 접수되면 현장에 나가 쓰레기더미를 뒤지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도로 청소는 미화원분들이 하시지만, 민원 해결이 급한 경우는 청소 장비를 챙겨 담당 주사님과 도로 청소를 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럽기도 하고 아는 사람을 만날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더러웠던 도로나 상습적으로 무단투기 쓰레기들이 쌓이던 지역이 깨끗하게 관리될 때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소업무를 보조하다 보니 미화원분들과 재개발구역 이주 쓰레기를 정비하기도 하고 무단투기 된 대형 폐기물이나 쓰레기더미들을 트럭에 싣고 쓰레기 처리장으로 가서 버리는 조대작업이라는 것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직접 청소 민원 현장에 나가 확인을 하고 작업을 해보니 분리배출의 필요성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도로정비를 하는 미화원분의 노고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청소 업무가 고되긴 하지만, 저의 노력으로 부평5동이 조금이나마 깨끗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행정복지센터 건물 옆에는 고물상이 있습니다. 그 고물상에 매일 파지를 리어카 한가득 싣고 오시는 할머니가 계시는데 그 할머니의 리어카 문제로 민원이 하루가 멀다고 접수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인도에 파지와 리어카를 보관하셨는데 좁아진 인도에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던 것입니다. 등하교 시간이면 좁아진 인도 탓에 도로를 통행하는 아이들과 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로 위험천만한 상황들이 펼쳐졌습니다. 인도가 좁아지니 통행의 불편함과 안전에 위협을 느낀 주민들은 할머니에게 리어카를 옮겨 달라고 몇 차례 요청했지만, 할머니의 리어카는 그 위치에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저와 담당 주사님은 민원 해결을 위해 할머니에게 여러 번 찾아가 자리를 옮겨 달라 부탁도 하고 설득도 해보았지만, 듣지를 않으셨습니다. 파지를 모으는 건 할머니의 생업이고, 연세도 적은 편이 아니셔서 강제로 리어카를 옮기면 할머니가 받으실 충격이 염려되어 함부로 철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민의 안전도 중요했기 때문에 리어카를 내버려둘 수도 없었습니다. 평소처럼 담당 주사님과 할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나갈 준비를 하던 중 담당 주사님은 급한 업무가 생기셨습니다. 주사님께서 급한 업무를 해결하러 나가시며 혼자 할머니를 설득해 보겠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위험한 도로에서 아이들과 할머니가 혹시나 다칠까 걱정이 되어 나가 보겠다고 했습니다.

 할머니께 “안녕하세요! 행정복지센터에서 나왔습니다.”라고 인사한 후 설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파지 정리를 도우며 “할머니! 오늘은 박스 많이 모으셨네요.”라고 하며 말을 붙였습니다. 그렇게 말 한마디씩 건네며 할머니와 대화를 시작했고 할머니는 늘 건너편 슈퍼마켓에서 파지를 받아오셨고 가까이 리어카를 두어야 하기 때문에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머니의 리어카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야 했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 지금 리어카를 두신 곳이 어린이 보호구역이라 초등학교 등하교 시간에 아이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자칫 위험하게 할 수도 있어요. 박스와 리어카로 좁아진 도로 위에서 차들이 통행하기 때문에 할머니도 일하실 때 위험해지시고요. 파지를 모으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가시면 할머니도 아이들도 다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요. 다른 주민들도 위험한 도로에 많이 불편해하고 있어요. 제가 도울게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시는 건 어떨까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이동하기로 하셨고, 저는 할머니와 함께 리어카를 근처 안전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급한 일을 마치신 담당 주사님은 리어카가 옮겨진 소식을 듣고 제게 고생했다며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저 또한 아이들과 주민, 할머니 모두에게 옳은 일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즘은 할머니와 마주치면 웃으며 이렇게 인사를 하곤 합니다. “할머니 오늘은 파지 많이 모으셨어요?”
 
미소를 주고 미소를 받았습니다.

 저의 친절한 말투나 배려로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고, 사람들의 기쁜 마음이 다시 내게 돌아와 내 오늘의 기분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해 보일 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먼저 나서기가 쉽지 않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도우면 돌아오는 미소와 감사의 표현은 저를 활기차게 하였고 자신있게 먼저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팩스나 복사기 사용을 어려워하는 노약자와 외국인들을 도왔습니다. 더 나아가 홀로 타지에서 이사 와 쓰레기봉투 판매처를 모르시는 어르신을  근처 슈퍼마켓까지 모시고 가기도 하였습니다. 조금 더 용기를 내 저와 주민 모두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 용기는 회색빛이었던 제 시야를 푸르게 만들어줍니다.

 전역하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기 전,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복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어렵고 잘할 수 있을지 두려웠습니다. 이제는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또 실수하더라도 다시 묻고, 다시 노력해서 마무리할 자신이 있습니다. 성실하게 복무하는 사회복무요원들의 노력으로 사회복무요원의 전체적인 인식과 처우가 개선된다면, 사회복무요원들은 더 큰 자긍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 “다시 너를 찾았니?”라고 묻는다면 “예! 다시 나를 찾았어요!”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며 다시 일어나는 방법과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강경석(인천광역시 부평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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