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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온 DMZ전사자 고 김진구 하사

화살머리고지서 발굴된 故 김하사의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 가져
Written by. 이숙경   입력 : 2020-06-03 오후 12: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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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은 3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앞산 충혼탑에서 故 김진구 하사의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실시했다.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는 6·25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쳤으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 전사자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모시는 행사다.

 전사자 故 김진구 하사는 1928년 2월 20일, 경북 영일군 송라면 대전리에서 4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21세에 결혼하여 슬하에 1남을 두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24세의 나이로 군에 입대했습니다. 당시 고인의 아들은 3살에 불과했다.

 고인의 아내 이분애(90세)씨는 생전에 그녀와 처가를 함께 가는 길에서 그녀를 업어주던 남편의 다정한 모습 등 남편과 함께한 추억과 애틋한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면서 남편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끝까지 기다렸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국가보훈처장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주관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한 올해의 첫 행사로서, 대구시장, 대구지방 보훈청장, 50사단장 및 수성구청장을 비롯한 대외기관과 수성경찰서, 6·25참전유공자회 등 6개 보훈단체가 참석했다.

 귀환행사는 유가족 대표에게 故 김진구 하사의 참전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에 관해 설명하고, 신원확인통지서를 전달한 후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이 호국영웅 귀환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故 김하사는 제 2사단 31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정전협상이 진행되었던 기간이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1953년 7월 13일, 화살머리고지 4차 전투에서 전사했다.

 4차 전투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전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 제2사단이 중공군 제23군 예하 제73사단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하여 전개된 전투다. 당시 국군 21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실종됐다. 중공군은 1,418명이 사살됐다.

 개인호에서 부분 유해 및 골절된 상태로 발굴되었던 점을 볼 때,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한치의 땅도 양보하지 않기 위해 진지를 사수하던 중 적 포탄에 의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의 아들 김대락(69세)씨는 2019년 11월, 아버지에 대한 그리운 마음으로 서울 현충원에서 주관하는 ‘가을의 행사’에 참석했던 당시 국유단 주관으로 위패 봉안관에서 실시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에 참여하였는데 그 덕분에 고인의 신원확인이 가능했다.

 김대락씨는 “어머니는 아버지가 전사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유해가 없어서 무덤이 없으니 내가 죽으면 선산에 뿌려달라’며 오랜 세월 가슴 아파하시며 사셨다. 신원확인이 되었다고 하니 너무 반갑기도 했지만, 지난 세월이 떠 올라 슬프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에 눈물이 났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찾아주신 국유단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개시한 이후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6・25전쟁 전사자는 총 142명이고, 특히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에서는 총 7명의 전사자 신원이 확인됐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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