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의 기다림...고 명한협·문장춘 일병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11일과 12일, 경남지역 유가족 자택 및 보훈회관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는 6·25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쳤으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산야에 잠들어 계신 ‘전사자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모시는 행사’다.
11일에는 153번째로 신원확인된 고 명한협 일병의 행사가 경남 사천에서, 12일에는 154번째로 신원확인된 고 문장춘 일병의 행사가 경남 김해에서 각각 열린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한 가운데 ‘국가를 위한 헌신에 끝까지 보답’하기 위해서, ‘사회적·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을 철저히 준수한 가운데 국유단장 주관으로 약식행사로 진행한다.
귀환행사는 국유단장이 유가족 대표에게 고인의 참전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에 관해 설명하고 신원확인통지서를 전달한 후 호국영웅 귀환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다.
153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고 명한협 일병은 부산 육군 훈련소로 입대 후 국군 제 6사단 소속(추정)으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가평-화천 진격전(1951. 5.22. ~ 5.30.)을 겪은 후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평-화천 진격전은 국군 6사단이 중공군(제 187, 188, 189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화천까지 진격한 전투였다.
이 교전에서 경계부대인 6사단 2연대는 3일 동안 중공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공격으로 전환했다. 이에 중공군은 가평 북측으로 후퇴하였으며 6사단은 이들을 추격하며 가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 발전소까지 60Km가량 진출하며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치열한 전장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전사하신 고 명한협 일병은 안타깝게도 66년이 지난 2017년 5월에 강원도 춘천에서 대퇴부, 윗 팔 부분의 유해 몇 점만 후배 전우들에게 발견되었으며 단서가 될 수 있는 유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1925년 8월 28일 경남 사천시 이홀동 일대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명한협 일병은 어려서부터 심성이 착하고 효심이 깊어서 가족들이 고인에게 의지를 많이 해왔다고 한다.
고인은 아내 이분악씨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외아들 명갑원씨를 키우며 살다가 1951년 2월경, 26살이 되던 해 세 살배기 아들을 두고 국가를 위해 입대하여 6·25전쟁에 참전했고, 아내 이분악씨는 평생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1993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아들 명갑원씨는 “아버지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포기하고 살았는데 찾게되어 정말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면서 “이 기쁨을 주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고 빨리 아버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154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고 문장춘 일병은 미 2사단 카투사(추정)로 배속되어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피의 능선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이 발굴된 양구 수리봉 일대에서 발생했던 피의 능선 전투(1951. 8. 18. ~ 9. 5.)는 미 제2사단 9연대와 국군 제5사단 35·36연대가 북한군이 점령했던 양구 방산면 일대의 고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투다.
이 교전에서 1차 전투는(8.18.∼8.27) 국군 5사단 36연대가 미 2사단에 배속되어 공격을 개시한 지 5일만에 고지를 점령했고 2차 전투(8.28.∼9.5)기간에는 백석산과 대우산 간의 측방도로를 확보함으로써 다른 양상이 없이 전투를 종결시키는 공을 세웠다.
치열한 전장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전사한 고 문장춘 일병은 62년이 지난 2013년 9월에 강원도 양구에서 팔·다리 및 갈비뼈 유해 몇 점이 후배 전우들에게 발견되었으며, 현장 유품으로 M1 탄두와 탄피가 함께 발굴되었다.
고 문장춘 일병은 1922년 6월 16일 부산 동래구 일대에서 4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전사자가 22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후 가장으로서 어머니를 모시면서 농사를 지었다.
그 후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며 살다가 1950년 8월, 28살의 나이로 4살의 아들과 뱃속에 있던 딸을 남겨둔 채 국가를 위해 참전했다.
고인의 딸 문경숙(70세)씨는 “유복녀로 태어나 평생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살아왔었는데 아버지 유해를 찾았다고 하니 감격스러워서 눈물도 나고 가슴이 떨린다. 다른 유가족들이 고인을 찾을 때 부러운 마음이 컸었는데 이제는 나도 아버지를 볼 수 있게 되어 감격스럽다. 국유단 관계자분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다른 유가족분들도 가족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유단은 “현재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약 6만여 명으로, 미수습전사자에 비해 시료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호국영웅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리기 위해서는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채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 참여는 미수습 전사자를 중심으로 친․외가 8촌까지다. 이에 해당하는 분들은 거주지 인근 보건소나 지소, 보훈병원 및 보훈요양원, 군 병원에서 유전자 시료채취에 참여할 수 있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표전화(1577-5625)로 연락하면 유전자 시료채취 키트를 발송하거나 직접 방문하여 채취한다.
국방부는 유가족들과의 협의를 거쳐 고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의미 있는 안장식을 거행할 예정이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마지막 한 분까지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있도록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의 내실화를 기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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