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⑫ 왜관지구전적비
여름방학을 맞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외출이 제한되면서 인터넷 검색이 주된 일과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던 중 올해가 6.25전쟁 71주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집근처에 기념비나 전적비가 있는지 알아보던 중 칠곡에 왜관지구전적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더 자세히 알아보러 현장으로 가게 되었다.
왜관지구전적비는 6.25전쟁때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 전몰장병들을 기리기 위해서 1978년 건립되었다. 전적비 약사에 따르면 1950년 8월 초 북한군은 5개 사단 병력을 왜관, 다부동 전선에 집중 투하하여 8월 15일까지 대구를 침공할 기세로 총공격을 펴왔다. 이 때 미 제1기갑 사단은 왜관과 그 남쪽 일대에서 적의 거듭된 공세를 혈투 끝에 분쇄하였다.
|
이로 인해 초조해진 적군은 9월 초에 다시 대구 방어선을 돌파하려고 총공격을 재개했으나 미 제1기갑 사단은 기동과 화력 그리고 과감한 반격으로 적에게 치명적인 출혈을 강요한 끝에 9월 중순에 이르러 적의 주력을 섬멸하고 끝내 대구, 왜관선을 고수하였다.
마침내 인천상륙작전에 호응하여 낙동강 방어선에서도 9월 16일을 기해 역사적인 총반격 작전이 결행되어 미 제5 연대전투단은 금부봉을 거쳐 20일에 왜관과 작오산을 탈환하였으며, 미 제1기갑 사단은 다부동을 거쳐 23일 상주로 진격, 낙동강을 도하하여 일로 북진하였다.
|
왜관지구전적비 좌측에는 태극기를 들고 있는 여성이, 우측에는 전장에 나간 군인의 모습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중간에 있는 비석에는
‘영령들이여! 우리는 보았노라. 들었노라. 기억하노라.
이 곳 유학산 봉우리에 그리고 낙동강 기슭에 남긴 그 때 그 날의 거룩한 희생을,
고귀한 피의 발자국 을 우리 겨레는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하리라.’
라고 적혀 있고 밑에는 영어로 번역을 해놓았다.
비문 양 옆에는 왜관지구 전사 약사문이 한글과 영어로 적혀 있다. 외국인들도 와서 읽을 수 있게 해 두었고 얼마나 많은 희생들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보름 이상이나 전투가 이어지고 그만큼 피해가 많았지만 미국이 방어선을 견고하게 지켜주었고, 많은 공군과 우리나라의 군인들이 낙동강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였더라면 다부동 전투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전투를 잊지 않고 꼭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왜관지구전적비를 돌아보며 많은 참전용사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군사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이 전적비는 왜관지구전적기념관 내에 위치하고 있어 기념관과 연계해 방문하는 것을 권장한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주요 전투인 왜관지구 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고 이 전투에서 전사한 전몰장병의 넋을 추모하며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된 기념관에는 남북한 관계, 우리나라의 발전, 호국영웅의 방, 전투모와 총기류 등이 있고, 야외에도 그 당시 사용된 탱크나 비행기 등 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6.25전쟁 당시 많은 국군과 유엔군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에 자유가 뿌리내렸다. 특히 이들의 희생을 우리는 물론 후대에서도 기억하고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기려야 한다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이러한 현충시설을 방문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억하는 계기를 가져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손보민














![[안보칼럼] 북한의 드론 전력 위협에 대비한 민·관·군 입체적 대응 방안](/img_data/article/260923/260923_6300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