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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㉔ 오산 유엔군초전기념비

Written by. 대학생 인턴기자 홍서희   입력 : 2021-11-09 오전 10: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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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11월 11일, 이날은 한국전쟁에서 자유수호를 위해 희생한 유엔 참전용사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나 또한 그분들을 기리기 위해 경기도 오산에 있는 유엔군 초전기념비를 찾았다. 먼저 유엔군 초전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1950년 7월 5일 미국 제24사단 소속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가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였던 오산 죽미령에 세워진 국가수호 현충시설이자 공립 박물관이다. 이 기념관은 죽미령 전투에서의 유엔군 희생을 기억하고 평화를 염원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교육과 체험,전시,행사 등을 운영하며 역사와 평화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초전기념비의 앞모습(왼쪽)과 대각선에서 본 모습(오른쪽). ⓒkonas.net


 기념관 주변에는 구 초전기념비와 신 초전기념비가 있는데 구 초전비는 1955년에 미 제24사단 스미스부대의 오산죽미령전투 참전을 기리기 위해 전투 당시 B중대 1개 소대가 배치되었던 99고지에 스미스부대원 수를 상징하는 돌을 쌓아 건립하였다. 2019년 오산평화공원으로 이전했다. 신 초전비는 구 초전비가 위치한 곳이 협소하여 1981년 전적지 개발 계획에 따라 새로 건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기념관 일대에는 오산 죽미령 전투를 1인칭 시점에서 다양하게 체험해 볼 수 있는 스미스 평화관과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이 있어 ‘전쟁의 시작’이었던 곳에서 ‘평화의 시작’을 향해 나아가는 역사.평화체험지구로서 모습을 갖춰 나가고 있다. 초전기념비는 북한군에 맞서 유엔군이 방어한 최초의 성벽임을 나타내는 세 겹의 높은 탑신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중앙에 스미스 부대원의 전투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7월 5일을 기하여 죽미령 전투의 의의를 기리고 전몰장병들을 추모하는 추념식이 거행된다. 초전기념비 벽면에는 비문, 회고문, 약사, 건립개요를 새겨놓았는데 특히 오른쪽 옆에 있는 비문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북괴의 이리떼 38선을 넘으니 자유수호 위해 유엔은 일어나다. 폭력엔 폭력을 다짐하고 급히 달려온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 앞장서 죽미고개에 서고 한국군 제17연대 이에 따르니 한, 미 연합 작전의 서막은 열리다. 현전 6시간 15분 피바다 이루고 화선은 낙동강으로 이어지네. 한 품은 고혼 이곳에 잠드니 혈맹의 우의 어찌 잊으랴.” 

 ▲ 초전기념비에 새겨진 비문, 회고문, 건립개요, 약사(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konas.net

 

 유엔군 초전기념관에서는 6.25전쟁 당시에 활용했던 전투기와 전차 등을 볼 수 있다.  'F-86F 세이버 전투기'는 North American사에서 제작한 미국 공군 최초의 후퇴익(weptback wing) 제트 전투기다. 이 전투기는 끝이 뾰족해 애칭이 세이버(Sabre)였다고 한다. 한국 공군은 6.25전쟁 후 북한의 MiG-15 제트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1955년에 F-86F 5대를 최초로 도입하여 제트기 보유 시대를 열기도 했다. F-86F 전투기는 1967년 서해 덕적도에 침투한 무장 간첩선을 격침하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야외전시장에 있는 'M48A2C 패튼 전차', 'M1 90mm 고사포', '14.5 mm 중고차 기관총', 'KM900 경장갑차' 등도 한국전쟁에서 그 임무를 충실히 했던 역사의 일부다. 

 ▲ 6.25전쟁 당시 사용된 전차와 무기. ⓒkonas.net

 1950년 7월 5일, 6.25전쟁에 최초로 투입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Smith)가 오산 북방의 죽미령에서 북한군 제105전차사단 및 제4보병사단을 상채로 실시한 방어전투가 벌어졌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미 제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 B중대와 C중대, 그리고 제52포병대대 A포대를 주축으로 편성되었다. 7월 1일 11시 수영비행장에 도착한 대대는 다음날 대전에 도착해 전황설명을 듣고 7월 3일 아침 열차편으로 이동, 평택과 안성 부근에 각각 1개 중대를 배치하고 지휘소는 평택의 국도변에 위치시켰다. 대대는 철수하는 국군과 피난민 대열을 뚫고 5일 새벽3시경 스미스 중령이 사전정찰한 죽미령의 각 진지에 도착했다. 아침 8시 16분, 스미스 대대는 화성 병점리 일대를 지나던 북한군 전차에 105mm 곡사포를 발사했다. 북한군과 유엔군의 첫 전투였다. 거침없이 남진하는 북한군과 6시간 15분간 교전 끝에 격전 결과 북한군은 127명, 미군은 180여 명이 희생됐다. 이 첫 전투에서 미군은 큰 손실과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미군은 전선에 참가하기만 하면 북한군이 겁을 먹고 도망가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북한군의 전투 능력은 예상 외였다. 패배한 전투라는 오명 속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전투는 ‘그래도 잃은것보다 얻은게 많은 전투’로 재평가 받고 있다. 이 전투 이후 북한군이 전열 재정비하는 틈을 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했고, 맥아더 장군은 두달여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했다. 또 이 전투로 미군이 적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닫고 4개 사단의 추가파병을 요청했고 이후 정전협정이 이루어질때까지 48만명의 유엔군이 한국에 파병됐다. 이 전투에 대한 의미를 축약한 말이 있다.  "스미스 특임대의 오산 죽미령 전투는 부산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피할 수 없었던 '죽음의 작전'이었다"(더글라스 맥아더 초대 유엔군사령관 전후 회고록 중).

 ▲ 스미스 부대원 540명 명판과 추모공간. ⓒkonas.net

 6.25 전쟁은 유엔 헌장을 위반한 북한과 공산국가에 대해 ‘다시는 지구상에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유엔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경제 대국, IT강국, 문화 대국으로 발돋움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6.25전쟁 때 유엔의 즉각적인 조치와 22개 자유 우방국의 헌신적인 지원, 그리고 낯선 땅 위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4만여 명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엔이 항구적인 평화를 구현할 수 있는 국제평화기구로서 권위를 드높이고, 아울러 유엔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기사회생한 대한민국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으로 성장하여 국제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결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분들의 피, 땀, 눈물과 열정을 잊지 않고 계속 기리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이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또 다른 위기가 닥쳤을 때 과거의 그분들이 그러하였듯이 우리 또한 조국인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만 한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홍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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