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㊹ 서울 한양도성 숭례문구간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숙정문 . 흥인지문 . 숭례문 . 돈의문이며 4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의문 . 혜화문 . 광희문 . 소의문이고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남쪽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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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순성길은 백악구간, 낙산구간, 흥인지문구간, 남산(목멱산)구간, 숭례문구간, 인왕산구간 총 6구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중 숭례문구간을 걸어보았다. 지금은 멸실된 돈의문 터에서 숭례문구간이 시작되었고 그곳에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서울에 몇 안 남은 고풍스러운 동네인 정동길에 들어서니 사람으로 들끓지 않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었다. 산책하기 좋은 동네, 문화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동네, 가로수가 예쁜 거리여서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언덕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적한 공원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배재어린이공원이다. 이곳은 1919년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던 역사적인 장소이고 배화여고 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투혼을 새기기 위해 만들어진 항일운동여성상이 첫 번째로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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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빠져나와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의 시작을 알린 아펜젤러 선교사의 숭고한 정신과 삶을 기리고 기억하고자 아펜젤러 선교사 탄생 160주년을 맞이한 ‘아펜젤러 기념공원’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순성길을 따라 걷다보면 지금은 멸실된 소의문 터를 마주할 수 있었고 숭례문까지의 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한양도성 순성길’이라고 해서 옛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거리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서울중심지와 잘 어우러져 있었다. 성곽을 주위로 크고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고 이곳이 서울 한양도성의 일부 구간임을 알려주는 문구를 찾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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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문 터에서 불과 10분도 걷지 않았을 때 저기 멀리서 크고 웅장한 숭례문이 빼꼼 날 반겨주었다. 서울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에 한양 도성의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다. 그 후 세종 30년, 성종 10년과 고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에 크게 수리하였다.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는 왼쪽과 오른쪽에 있던 성곽을 철거하였고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3년에는 응급 복구 작업을,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는 전면 해체 보수작업을 하였다.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방화 사건으로 건물 전체가 크게 훼손되어 2013년 4월까지 복구 작업을 하였고 이때 왼쪽과 오른쪽 성곽도 함께 복원하였다. 숭례문은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또한 석축 위에 세워진 중층 누각은 장식이 간결하고 내부 구조가 견실하여 조선 초기의 건축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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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 홈페이지에서는 한양도성의 유산적 가치를 ‘오백여 년 동안 조선왕조의 도읍으로 궁궐, 관청, 종묘·사직과 도성 백성의 보호막으로 나라의 중심이자 도읍의 상징’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축조되고 부서지고 방치되고 복원하는 세월을 이겨낸 오늘날의 한양도성은 천만 도시 서울이 품은 역사유적으로 자연 속의 도시경관과 도시 속의 역사경관이 조화를 이루며 600여 년 역사를 지켜오고 있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우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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