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기념] (8)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비
경북 영덕, 해변과 작은 숲 사이 자리 잡은 이 조형물 앞에선 누구나 발걸음을 멈추기 시작한다. 마주보는 듯 갈라진 두 벽 사이 묵묵히 세워진 추모비는 그 자리에 세워져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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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다. 서울이 무너지고 낙동강 방어선마저 위태한 상황에서 유엔군과 국군은 전세를 뒤집기 위해 그 유명한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이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는데 바로 여기 장사리에서 그 임무를 맡게 되었다.
1950년 9월 14일 오후 4시, 학도병 772명을 태운 문산호는 부산항을 출발해 장사리 해안으로 향했다.
9월 15일 새벽 5시경, 장사리 해안에 도착했으나 태풍으로 인한 강한 파도와 폭우에 문산호는 상륙 중 좌초되고 무기와 식량이 바다 깊숙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학도병들은 맨몸으로 해변을 향해 돌진했고 적과 전투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이틀 계획의 작전은 8일간 고립 전투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약 139명의 학생이 전사하였다.
전쟁의 소용돌이 사이에서 교복을 벗고 총을 들었던 평균 나이 약 17세인 772명의 학도병들의 꽃다운 나이의 용기와 희생이 이곳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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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문산호를 본떠 만든 조형물에는 총을 들고 전진하는 병사, 힘차게 외치는 병사처럼 하나하나 실재했던 어린 영웅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학도병들의 희생 덕분에 북한군의 시선은 장사리로 향했고, 결국 우리가 아는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였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그날, 중심에는 학도병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 사건은 2000년에 들어서야 이 작전의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2019년엔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 개봉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사상륙작전을 알지 못한다.
이름 모를 청춘들이 목숨을 걸고 발 벗고 나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송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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