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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이상과 역사의 지혜

Written by. 이배용   입력 : 2013-09-02 오전 8: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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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로부터 임금이 즉위하면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에 고한다 하였다. 종묘는 왕실의 조상을 제사 지내는 사당으로 유교국가의 효(孝) 사상과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의 표상이다. 조선왕조가 1392년에 건국되고 한양으로 도읍지를 정하고 제일 먼저 지은 건물이 종묘와 경복궁이다.(1395년) 그만큼 종묘는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데 정신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종로의 한복판, 서울의 중심에 있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한편 사직은 경복궁의 우(右)편인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흙으로 된 사단(社壇 )직단(禝壇) 두 단이 조성되어 지신(地神)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다. 왜냐하면 임금이 지켜야하는 통치의 필수덕목이 백성을 외침에서 보호해야하는 안보의 기능과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민생의 안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사단은 안보와 직단은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그만큼 예나 지금이나 나라의 정통성을 지키고 민족을 보호하는 안보와 국방은 지도자의 필수 덕목인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는 굽이굽이 외침과 수난의 굴곡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의 각고의 의지와 노력으로 역사의 길을 넓힌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대한민국의 번영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 역사를 이끌어온 수많은 훌륭한 리더 중에서도 삼국통일의 길을 열은 선덕여왕의 지혜와 민족문화의 토대를 굳건히 구축한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한국역사에는 3명의 여왕이 존재하는데 그 중 최초의 여왕이 632년 신라 27대 임금으로 즉위한 선덕여왕이다. 선덕여왕은 정확한 시대적 통찰력을 가지고 통일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였다. 인재 등용의 탁월한 혜안을 가지고 김춘추, 김유신을 비롯한 애국 전사들을 통일의 역군으로 양성하여 통일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다.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하여 통일을 위한 기반을 하나하나 갖추어 나갔다.

 선덕여왕은 무엇보다도 무기보다 무서운 것은 분열이라는 철저한 인식에서 신라 내부의 단결과 민생의 안정에 주력하였다. 농업사회에서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동양 최초의 천문관측기구인 첨성대를 건립하였다. 첨성대는 농사의 때를 가르쳐 주고 풍년을 이루어 민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배려의 마음에서 창조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또한 80m나 되는 거대한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여 선덕여왕의 통일의 꿈을 백성들과 함께 하면서 단합의 마음을 더욱 굳건히 하였다. 당시는 불교 국가이기 때문에 불국토를 지킨다는 정체성과 신라를 향해 쳐들어오는 9적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층마다 일본, 중국을 비롯한 적국의 이름을 담아 놓고 탑돌이를 하면서 결집을 다졌던 것이다. 선덕여왕의 안보와 민생을 위한 진정어린 마음이 백성들과 소통하면서 통일의 길을 넓게 닦아 놓았던 것이다.

 한편 우리 역사상 최고의 리더 세종대왕의 인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 경영은 백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세종대왕의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인간주의 정신은 수많은 찬란한 문화유산을 만들어 냈다. 또한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과 독창성으로 민족문화의 토대를 구축하고 가장 뛰어난 창조물인 한글을 창제하였다.

 약 8,000개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인류 최고의 과학적 문자로서의 우수함뿐 아니라 말과 글이 다른 현실에서 눈을 떴어도 글을 몰라 어두운 세상을 사는 백성들이 가엾고 안타까워서 그 연민의 마음으로 자음, 모음을 개발해서 만든 소통과 화합과 배려의 문자이다. 농업사회의 생산력을 높이고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제작된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 간의, 해시계,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 강우량 측정기구인 측우기 등의 문화유산들은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한편으로는 대마도를 정벌하고 여진을 개척하여 영토를 넓히고 불안에 떠는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켜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세종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있어 우리 민족의 천 년, 만 년의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올해가 북한의 남침으로 6·25가 발발한지 63년, 정전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6·25 참전 용사 및 그 자녀들에 대한 보은의 행사가 여기저기서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매우 바람직하고 다행한 일이다. 그 당시는 누가 오늘이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103년 전에 일제의 침략 만행에 빼앗겼던 나라 아닌가. 그러나 우리 민족의 불굴의 의지로 35년 만에 되찾은 나라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 금메달을 딴 사실은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다. 동메달도 남승룡 선수가 차지했다. 그런데 시상대에 선 이 두 메달리스트의 얼굴은 풀죽은 고개 숙인 모습이었다. 식민지의 울분을 달림으로써 해소하려 했는데 막상 금메달을 따니 가슴엔 태극기 대신에 일장기가 달리고, 태극기 대신에 일장기가 올라가는 나라 없는 서러움에 한 없이 슬픈 금메달리스트였다.

 이제 태극기를 달지 못하고는 더 이상 뛰지 않겠다는 손기정 선수의 피눈물 나는 각오가 있은 지 56년 후에 이 한을 풀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빼앗겼던 나라를 다시 찾은 민족답게 잃어버렸던 금메달을 황영조 선수가 다시 찾아낸 것이다. 더욱이 혼신의 힘을 다해 일본선수를 제치고 결승점에 뛰어 들어올 때 감격의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가슴에는 태극기가 달리고, 당당히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슴에 손을 얹고 경의를 표하는 황영조 선수의 눈물로 범벅이 된 환희의 모습은 한국인의 시대에 대한 책임과 열정, 그리고 애국심이 만들어낸 역사의 명장면이었다.

 우리나라는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하였다. 준비 없는 미래가 없듯이 치열하게 일제시대를 극복하려고 투혼을 불태웠던 독립의 의지로 광복의 날이 온 것이다. 오늘날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하고 중국이 동북공정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이때에 역사교육을 강화하여 우리 역사의 자긍심과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통일의 시대와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konas) 출처: 월간자유

이 배 용 (이화여대 13대 총장, 국가브랜드위원회 2대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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