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칼럼〕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내가 평양에 있는 상수공립심상소학교(上需公立尋常小學校)에 입학한 것은 1935년 봄이었습니다. 어머님이 힘들게 마련해주신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모자를 벗어 가방 위에 놓고 한참 걸어온 까닭은, 집에 왔을 때 어머님이 “너 모자는 어쨌니?”라고 물으실 때 가방 위에 얹었던 모자를 보여드리며, “여기 있어”라고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도 장난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그 모자가 없어진 겁니다. 흔들며 걸어오다 길에 떨어뜨린 것입니다. 처음엔 놀라서 말도 못했지만 곧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때 어머님이 나를 안고 “괜찮아”라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그 얼굴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미소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어머님의 그 미소였습니다.
나는 무슨 일로 국법을 어기었다하여 재판을 받고 15년 징역이 언도되어 안양교도소에 수감되어 이럭저럭 감옥에서 1년을 살았습니다. 뒤에 오재경 선생에게서 들은 말인데, 오 선생이 어느 추운 겨울 날 내 누님 김옥길 총장을 만날 일이 있어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실을 찾아갔더니 방이 썰렁하고 온기가 전혀 없더랍니다. 오 선생이, “왜 이렇게 추운 방에 계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내 동생은 교도소 냉방에서 고생하는데 내가 어떻게…”라고 하였답니다. 출소 후에 그 말을 듣고 혼자서 많이 울었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형제간의 사랑입니다.
사랑 때문에 사랑을 떠난 한 여인을 나는 오늘도 기억하고 그리워합니다. 나의 앞날에 걸림돌이 될 것을 저어하여 말없이 떠나서 말없이 살다가 말없이 저 세상으로 간 그 사람의 그 사랑이 없으면 오늘의 나는 없을 것입니다.
천성을 향하여 오늘도, 노인다웁게, 천천히 나는 갑니다. 거기서 나는 나를 그토록 간절히 사랑하여 준 꽃보다 더 아름다운 그이들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꿈 아닌 꿈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나는 갑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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