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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칼럼]가장 부끄러운 죽음은?

Written by. 김동길   입력 : 2014-04-25 오전 9: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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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고 병들어서 요를 깔고 누워서 앓다 죽는 일일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늙은이가 병상에 누워서 무위도식하는 세월이 길면 길수록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포함한 지구상의 ‘무수한’노인들이 그런 부끄러운 죽음을 죽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렇다면 동물이 아닌 인간의 가장 바람직한 죽음은 어떤 죽음입니까? 나는 옛날부터 두 가지의 죽음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순교자의 죽음입니다. 신라 불교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고 전해지는 이차돈의 죽음이나 천주교를 전파하려다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대건의 죽음이 이 나라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죽음이었습니다. 두 분은 다 스물 네 살이었답니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옥사한 주기철 목사, 공산당을 향해 “안 된다”고 비판하다 옥사한 김화식 목사도 모두 우러러볼 만한 위대한 삶을 값지게 마감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순국한 애국자들입니다. 정몽주 때문에 고려조는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이순신이 있었기에, 그가 순국하였기 때문에 조선조는 살았고 그 정신을 이어 받아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영광스러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능력을 가지고 평범한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슬픔 속에서 살았지만 감히 안중근처럼, 윤봉길처럼, 일제에 일격을 가해보지 못하고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를 모셨으면 나도 그렇게 순교할 수 있었을까? 안중근 의사를 따라 하얼빈엘 갔으면 나도 그런 장렬한 죽음을 죽을 수 있었을까?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그저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제 내 나이 여든 일곱인데 이 가슴에 무슨 꿈이 아직도 남아있겠습니까? ‘오호노이’(鳴呼老而) ‘시수지건’(是誰之愆) - “오호라 나 이젠 늙었으니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고.” 주자(朱子)의 탄식입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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