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칼럼〕목욕‧재계하는 까닭
사람은 중대한 일이 있는 날이 다가오면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을 피하여 마음을 가다듬는 절차를 밟는 것이 관례입니다. 결혼식이나 입학시험이나 제사를 앞두고 인간은 누구나 다소 ‘종교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요새 대한민국이 겪는 온갖 시련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불상사의 연속이 아니라 큰일을 앞에 두고 이 겨레가 마땅히 거쳐야 하는 ‘목욕‧재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하며 국민의 절대다수가 가슴 아파합니다. 그러면서 각자가 스스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너 때문이야!”가 아니라 “나 때문이야!”하고 울부짖는 통회의 시간이 되는 겁니다. “네 탓이오”하지 않고 “내 탓이오”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겁니다.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던 사람들도 다 입을 모아, “하늘이 무섭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남북통일의 날이 멀지 않다고 느끼는 한국인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8‧15해방은 몸과 마음의 준비가 전혀 없이 맞이한 민족적 경사라 혼란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통일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허락된 느낌입니다.
마음의 준비 없이 덜컥 맞이하는 통일이 아니라 ‘목욕‧재계’하고 맞이하는 감격과 환희의 날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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