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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칼럼〕하늘이 무섭지 않은가?

Written by. 김동길   입력 : 2014-05-07 오전 1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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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또는 해서는 안 될 고약한 짓을 했을 때,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천인공노(天人共怒)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늘과 사람이 함께 분노할 일 또는 인간을 두고 쓰이는 낱말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그런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런 인간이 가끔 나타납니다. 그 원인을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그런 인간을 두고 “사귀가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성서>의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은 인류의 타락이 ‘사탄’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풀이하고, 우리 후손들에게 그 ‘낙원’의 회복을 당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영국 시인 존 밀턴은 먼저 <실낙원>을 쓰고 그 다음에 <복낙원>을 썼습니다. 잃어버린 낙원을 다시 찾는 것이 인류의 꿈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올바른 종교는 예외 없이, 사람 사는 세상이 낙원이 되게 하기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종교가 진심으로 그런 운동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의 세계는 도외시하고 물질의 세계만을 강조합니다. 하늘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고 땅만 보고 다닙니다. 돈 밖엔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개 눈엔 똥만 보입니다.

 양심과 법 중에 어느 것이 더 소중합니까? 양심은 버리고 법만 앞세우다 보면 거짓이 판을 치는 오늘의 대한민국 같은 한심한 사회가 되는 겁니다. 물론 제도가 절실합니다. 그러나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으면 제도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새삼 ‘양심’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것이 다 세월호의 교훈입니다.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이비 인간들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나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양심을 잃은 종교는 짠 맛을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 양심이 없는 법과 제도는 백해무익한 것으로 우리 사회에 질서를 주지 않고 오히려 혼란을 가져옵니다.

 양심의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거기서 재출발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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