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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이 있어야

Written by. 김동길   입력 : 2015-10-01 오전 9: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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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긴 것은 말 같은데 물소처럼 굽어진 뿔을 가진 묘한 동물들이 아프리카의 메마른 들판을 떼를 지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 건지 알 길은 없지만 하도 목이 말라 케냐 어디선가 강물에 뛰어들어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먼저 뛰어든 물소 한 마리가 악어에 물려 발버둥치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짐승들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모두 강을 뛰쳐나와 육지로 도망가서 목숨을 건졌고, 그 한 마리 짐승만이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그 한 마리가 희생의 제물이 되어 악어 밥이 되어 먹혀 죽는 그 시간에 다른 짐승들은 살아서 도망가 길고 긴 그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희생이 없이는 어느 하나 바람직한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인류의 역사요 인간의 현실입니다. 교황청의 잘못된 권위에 도전하여 마침내 종교재판에서 화형이 언도된 보헤미아의 젊은 수도승 요한 후스(John Huss, 1370~1415)의 희생이 없었다면 루터도 칼빈도 없었을 것이고 나 같은 사람은 종교 없이 세상에 살다가 갔을 지도 모릅니다.

 만일 우리나라 근세사에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같은 ‘희생양’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한국인이 과연 잃어버린 독립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승만, 박정희가, 타고난 DNA를 잘 가꾸어 대통령으로서 큰일을 한 이 대한민국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민족의 제단 앞에 스스로 희생의 제물이 되신 어른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큰 제물이 되고 그런 큰 인물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뿐 아니라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자기의 분수를 알고 날마다 “검소한 생활과 고상한 생각”을 힘쓰는 민초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안 할 수 없습니다. ‘평범’이 ‘비범’을 뒷받침하는 것이 역사에 엄연한 하나의 ‘룰’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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