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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은(三隱)은 간곳 없고

Written by. 김동길   입력 : 2015-09-24 오전 9: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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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는 배울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제 있던 일이 오늘도 되풀이 되고 오늘 있는 일이 내일에도 그대로 벌어지는 역사의 현장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릅니다. 역사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뚜렷한 교훈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교훈을 외면하는 것뿐이지 만일 인간이 그 교훈을 따라 생활하고 활동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고려 말에 ‘삼은’이라고 불리 우는 훌륭한 선비들이 있었습니다. 호가 도은(陶隱)이었던 이숭인(李崇仁)을 함께 하면 사은(四隱)이 되겠지만, 나는 야은(冶隱) 길재(吉再)에게 더 마음이 끌리기 때문에 목은(牧隱) 이색과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두 분을 함께 ‘삼은’이라고 받들고자 합니다.

 난세에 인물이 두각을 나타냅니다. 평화로울 때에는 학문의 넓이와 깊이만이 문제가 되지만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학문만이 아니라 선비의 인격이 문제가 됩니다. 도덕적 결단력이 선비의 품격을 드러내게 됩니다. 소신 때문에 벼슬을 떠나거나 사양하는 선비도 있고 신념으로 일관하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비도 있습니다. 맞아 죽을 줄을 뻔히 알면서도 확신이 있어 태연히 죽음의 길을 택하는 지사(志士)나 열사(烈士)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아침 이색(李穡, 1328~1396)의 시조 한 수를 읊조립니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목은(牧隱)은 열네 살에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한 수재였다고 합니다. 그는 원나라에 가서 3년간 유학하고 돌아와 17세의 어린 나이에 향시(鄕試)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마침내 우왕의 사부(師傅)가 되기도 하였으나 뜻을 같이하던 정몽주가 피살된 뒤에는 일체의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하며 끝내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어지러운 나라 일을 걱정하면서 이 시조 한 수를 읊은 목은에게 새삼 경의를 표합니다. 역사에 남는 것은 업적이 아니라 도덕적 용기입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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