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安한 平和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부르짖지만 평화는 없습니다. 남북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공론화되어 있지만 그런 통일이 가능하다고 정말 믿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사람을 찔러 죽이기 위해 만든 창(槍)을 쳐서 풀을 베기 위해 낫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오히려 농기구인 낫을 쳐서 무기인 창을 만들면서 엮어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창설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하였고 오늘의 국제연합(United Nations)이 중동의 분쟁을 막지 못하여 날마다 수천 명의 피난민들이 그들의 조국과 고향을 떠나 잘 사는 나라들을 찾아 나서지만 잘 사는 나라들이 잘 받아주지 않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상하게 머리를 깎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까닭 없이 씩씩 웃기도 하는 북의 김정은을 향해, “핵무기를 포기하고 북녘 땅에 있는 우리 동포 2,300만을 좀 평화롭게 살게 해주세요”라고 간청을 해도 그 자가 그런 고마운 권고를 들은 척이나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평화롭게 통일이 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입으로는 ‘평화통일’을 부르짖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위선인 동시에 “눈 가리고 아웅”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남과 북이 모두 평화롭게 통일을 하자고 말은 하지만 그렇게 되기가 어렵다 못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살림을 쥐어짜서 피차에 군비증강에 충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폴레옹 전쟁은 오스트리아의 정치가 메테르니히(C. F. Metternich, 1773~1859)가 주도한 빈 회담(Congress of Vienna, 1814~1815)으로 마무리가 지어졌는데, 그 평화는 그래도 100년은 유지가 되었지만 1차 세계대전을 끝내면서 창설된 국제연맹(1919)은 단 20년도 평화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냉전(冷戰)도 일종의 전쟁이었습니다. 한반도의 남북은 그 냉전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고 남과 북을 평화롭게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영웅적’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합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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