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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교만

Written by. 김동길   입력 : 2015-11-02 오전 11: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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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것이 탈이다”라는 말은 옛날부터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모르는 게 약이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도 있는 것을 보면 “아는 체 하고 잘 하는 체하는 덜 떨어진 놈들 때문에 세상이 이 꼴이 되었다”는 격언으로도 풀이가 됩니다. 옛글에도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나는 최근에 프랑스의 작가 까뮈(Albert Camus, 1913-1960)의 유고집 <최초의 인간>의 ‘편집자 서문’을 읽고 ‘사이비(似而非) 지식인들’이 세상을 망친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서문은 그의 딸(Catherine)이 매우 짧게 썼는데, 까뮈가 세상을 떠나고 무려 35년 만에야 그 유고집이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렸는가? 까뮈의 부인이며 이 딸의 엄마가 출간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왜?’라는 질문이 뒤따르게 마련인데, 그 동기는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그의 남편이 소위 좌파(左派)로 자처하는 지식인들에게 또 다시 부당한 공격과 비난을 받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딸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고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짐과 동시에 소련도 무너졌기 때문에 이 딸이 유고집의 출판을 결심한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당시 좌파 지식인들의 관심은 두 가지 뿐이었습니다. 하나는 Soviet Union이었고 또 하나는 Algeria의 독립이었습니다. 당시 좌파는 공산 정권에 대한 어떤 비판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런 비판이 공산정권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키고 ‘보다 나은 세상(A better world)’을 지향하는 ‘인성의 전진’(Humanity's progress)을 지연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좌파들은 Algeria의 독립 문제에 관해서 또한 까뮈와 의견을 달리 했기 때문에 그를 비판‧공격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Algeria가 아랍인들의 독무대가 되기를 바랐지만 까뮈는 아랍인과 서구인이 공존하는 연방제를 선호하였기 때문입니다.

 까뮈는 소련에 존재하는 ‘강제수용소’(Gulag)와 스탈린 치하의 무자비한 재판과 소련에 팽배한 전체주의(totalitarianism)를 정죄했기 때문에 좌파들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념(Ideology)은 마땅히 ‘인성’(Humanity)을 섬겨야 하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그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까뮈와 함께 전체주의 정권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려는 인류의 꿈을 오히려 산산조각이 나게 하였다고 믿고, 이 땅의 어설픈 ‘자칭 좌파들’에게 경고하는 바입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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