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불안한가?
산업혁명을 겪은 뒤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 매우 불안해졌습니다. 농경사회에 살던 때에는 가끔 기근도 있고 역병도 돌았지만 그런 때는 잠깐이었고 농토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서 사람들은 거기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공장이 생기고 대도시가 형성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를 찾아가 공장 노동자로 먹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삶의 스타일은 변하고 질적으로도 많이 달라진 것입니다. 근년에는 자가용 타고 한가위에 고향을 찾는 아들‧딸이 많다고는 하지만 알맹이는 없고 고향 방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산업사회가 되어서는 변치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부모의 자식 사랑입니다. 주말에 큰 호텔의 로비에 앉아 약속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많은 젊은 내외가 아이들 한 둘을 데리고 여행복 차림으로 여럿 들어옵니다. 저렴한 가격의 주말 Package tour에 끼어서 온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젊은 부부의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여행 경비라고 하겠습니다.
‘젊은 부모’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벌어서, 그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킵니다. 집집마다 자녀 교육에 드는 돈이 가계의 40%를 차지한다고 들었습니다. 한 달에 300만원을 받으면 그 중에서 120만원은 아이들의 교육비로 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마치고 취직하고 시집가고 장가하면 아파트 전세 값이라도 대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잘못 알고 사는 아빠‧엄마가 수두룩합니다. 그들은 ‘노예처럼’ 살다가 책임을 면할 때쯤 되면 머리도 빠지고 허리도 굽고 치아도 좋지 못한 ‘초로(初老)’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농경사회에는 있었고 산업사회가 되어서는 자취를 감춘 가치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효(孝)’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있는데 이에 보답하려는 아들‧딸의 노력은 전혀 없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불행하게 만듭니다. 매우 불공정한 사회라고 하겠습니다.
부모에게 불효를 감행하는 이 시대의 아들‧딸이 머지않아 그들 자신도 그런 신세가 될 것입니다. ‘악순환’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효’가 없이는 이 시대적 불안에서 탈출할 수가 없습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안보칼럼] 강한 국군이 곧 평화의 조건이다](/img_data/article/260930/260930_6303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