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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총을 생각한다

Written by. 김동길   입력 : 2015-12-03 오전 9: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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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을 만들기 전에는 칼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서>에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칼이 제일 무서운 무기였고 ‘창’이나 ‘활’도 훨씬 뒤에 생겼을 것인데, 원시시대에는 칼이 쇠붙이가 아니라 돌을 가지고 만들었고, 처음에 때려서 만들고(打製) 뒤에는 갈아서 만들어(磨製) 이 사실이 신석기(新石器) 시대와 구석기(舊石器)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원시인들이 잡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기 위해 돌을 다듬어 칼처럼 만들었을 것인데 쇠로 만든 칼이 등장한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주방용이었겠지만 차차 호신용으로 또는 전쟁용으로 바뀌어 일본의 ‘사무라이’(武士)는 칼 한 자루만으로는 불안하여 두 자루를 차고 다니다 일단 유사시에는 양손에 칼을 들고 칼싸움을 벌였습니다. 요새도 가끔 횟집의 예리한 부엌칼이 갱단의 패싸움에 큰 몫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그 무서운 칼이 악당의 수중에 있으면 안 됩니다. 그 놈이 그 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악한의 손의 칼은 되도록 빨리 뺏어야 합니다. 보고만 있는 것은 위험천만입니다. 권력의 일차적 책임은 악인들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이를 쳐 농사일에 쓰이는 낫이나 호미나 보습을 만들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을 정치라고 합니다. 또는 아주 예리한 작은 칼을 만들어 수술을 맡은 외과의사만이 쓰게 해야 합니다.

 총(銃)과 포(砲)는 더 무서운 ‘악’을 행하는데 쓰일 수도 있습니다. 요새 핵무기를 만들어 그 로켓을 쏴 올리겠다고 으르렁대는 악동 아닌 맹수가 우리들 가까이에도 있습니다. 그런 자를 가까이 두고 한국인은 단잠을 잘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의 나라들도, 멀리 있는 미합중국도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그러나 그 자를 성토(聲討)하는 목청만 돋울 뿐 사전에 손을 쓰지 않고 ‘수수방관’하니 폭풍의 전야 같아, 불안을 넘어 불길한 느낌마저 감돕니다.

 그러나 나는 하얼빈 역두에서 브라우닝 자동권총 한 자루를 가슴에 품고, 동양평화를 송두리째 흔드는 일본의 침략자 이또 히로부미를 기다리던 1909년 10월 26일의 그 한국 청년과 그가 품고 있던 그 권총 한 자루에 나는 무한한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 내가 있는 것은, 오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은, 그 권총 한 자루의 덕이 아니겠습니까?

 안중근의 품의 그 ‘총’ 한 자루는 정말 위대한 ‘총’ 한 자루였다고 나는 믿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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