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자리] 40년 전 그 때 우린 그랬지!
“그래 바로 저기야, 저 곳이 확실해”. 흥분된 음성 탓인지 당장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며 옥타브가 높아진다. “저기에서 온 몸이 굳은 상태에서도 긴장을 풀기 위해 PT체조로 정신을 가다듬는 반복 훈련을 한 다음 조교의 ‘하강’ 지시에 힘차게 뛰어내렸지.”
40여년이 흐른 시점에서 옛 훈련지점을 찾아 청춘의 뜨거운 피가 끓던 군(軍)시절을 회상하는 사나이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포근한 미소 속에 지금 당장이라도 명령만 떨어진다면 ‘돌격 앞으로’ 뛰쳐나갈 자세가 된 것만 같이 기세등등함으로 다가온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예전의 잘록했던 허리엔 비곗살이 붙고 몸은 다소 굼떠졌어도 마음만은 20대 그 시절보다 오히려 더 담대하고 국가 안위에 대한 걱정은 더 진하고 강해진 모습으로 비쳐졌다면 예나 지금이나 관련분야에 오랜 동안 종사해온 필자만의 지나친 비약일까?
대한민국 남자, 그 중 장교는 우선 배제하고 지금과는 현저하게 다른 만 36개월 복무하고 전역하던 병장에서 4주간의 병역특례로 군 생활을 마치는 보충역에 이르기까지 술자리에서 입담을 자랑하는 군대얘기 보따리. 그 중에서도 온몸이 뒤틀린다는 유격훈련을 필두로 소대별 축구시합, PX에 취사장 얘기 등을 술술 풀어나가지 못한다면 ‘군대 갔다 왔다고 말하지 마라 - 군인 취급 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술 안주거리가 별로 없다(?)는 농담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이는 아마도 대한민국에 징병제가 존속하는 군대가 있는 한 푸짐한 술안주는 늘 함께 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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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4월21일 아침, 장년의 대한민국 군필(軍畢) 예비역 세 남자가 서울을 나섰다. 전 날 밤부터 가뭄을 해소해주는 새봄의 단비가 기분 좋게 동행중이었다. 자욱한 안개에 차창을 두들기는 빗발이 거셌지만 저마다 가슴은 부풀고 유쾌함으로 가득했다. 대화의 주된 화제는 단연 군대 얘기였다. 전라북도 여산에 위치한 부사관학교를 우선 목적지로 하는지라 논산훈련소 입소에서 제2하사관학교(지금의 부사관학교의 옛 명칭) 에서의 교육 시절과 그 중에서도 으뜸인 유격훈련장을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군 선후배 사이인 예비역 장교였기에, 주인공은 당연히 부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육군하사’로 임용된 이석희(60. 사업, 예비역 하사) 사장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차량은 빗속을 뚫고 목표지점을 향해 힘차게 내달렸다.
남자들만의 로망(?) 육군훈련소
출발한지 2시간여, 우리들은 충남 연무 읍에 위치한 연무대(육군훈련소) 정문 앞에 도착했다. 그 시절 대한민국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리운 아들과 헤어지기가 안타까워 흐르는 눈물을 연신 손수건으로 적셔야 했던 그 때의 엄마에서, 단 1분이라도 더 함께 하고 싶어 부여잡은 두 손을 놓을 줄 모른 채 연인들 간 주고받는 애절한 눈물바람이 있어 눈물의 종착지라고 붙여야 하나? 말로만 들어온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논산훈련소’ 인 것이다.
필자도 20년 군복무를 했지만 현역시절은 물론 이후에도 단 한번 논산훈련소를 와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비록 남자들만의 전유물이던 논산훈련소를 볼 기회는 없어도 예비역이 돼 겉만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에 젊음이 용솟음치던 청춘의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 올라 가슴 뭉클해짐을 어쩔 수 없었다.
연무대를 바라보며, “하룻밤이던가 여기 훈련소 체육관인지 어딘가에서 잠을 잤지” 예비역 하사인 李 선배는 입대 동기들과 부사관학교를 향해 떠나던 40년 전을 떠올렸다. “그 때 서울자원으로 논산훈련소에 도착한 우리 기수가 240명인가 그랬지. 다음날 아침 식사 후 연병장에 집합해서 전원 이동한거야. 여산에 있는 부사관학교로 간거지. 그리고 다음날 전원 집합시켜놓고 120명씩 2개조로 줄을 세우더라. 나중에 보니 내가 선 줄은 하사가 되는 줄이고 다른 줄은 병장 분대장 교육받는 줄이야. 우리는 거기서 4주간 교육 후 하사가 돼 나는 병과가 포병으로 분류돼 광주 포병학교로 가서 6개월 교육을 받았지. 다른 줄에 선 친구들은 그대로 거기서 4주간 교육을 받아 흔히 말하는 ‘물 병장’으로 분대장이 된거야.” 그러면서 줄서기에 따라 순간의 운명, 계급장이 바뀌었다고 말해 한참 웃음이 터졌다.
웃음이 더 크게 터진 건 그 다음이었다. 부사관학교로 가는 장정(壯丁: 군역에 소집된 남자)들에게 전투화와 전투복, 몇 가지 장구류 들을 지급했는데, 정작 배낭이나 더불백도 없이 전투복도 입히지 않은 채 입영 당시 사제복장 그대로 전투화만 착용케 했다고 했다. 그리고 전투복 하의를 묶어 배낭 대용으로 하게 한 뒤 그대로 어깨에 맨 채 논 ․ 밭두렁 길을 도보로 이동케 했다는 것이다. 당시를 상상해보면 박박 깎은 머리에 사복차림, 신발은 제대로 매어지지 않는 전투화, 어깨에는 푸른색 전투복으로 배낭화 해 짊어졌으니, 이른 새벽녘 어디선가 그 장면을 보게 된다면 혹여 떼지어 남으로 내려온 북에서 온 산사나이(?)로 착각되지나 않았을까? 어려운 경제사정이었으니 군 에선들 어쩔 수 없었으리나는 생각과 함께 오늘의 군을 돌아볼 수 있는 얘기의 한 순간이기도 했다.
부사관의 요람 부사관학교를 거쳐 유격장으로
40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학교는 현대식 황토색 페인트로 멋스럽게 치장된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정문 도로 양옆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퍽이나 정감적이고 안정감 있게 다가오는데, 군가를 소리 높게 부르며 오후 학과출장에 임하는 교육생들의 맑은 음색이 귓가를 파고들어 청년의 패기로 군인정신으로 뭉쳐진 대한민국 군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사뭇 들떠지는 것 같았다.
李 선배 또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건물은 다 바뀌었어도 예전 위치하던 박물관이며, 검게 변색된 부대 울타리 벽돌 담장은 옛 모습 그대로 라며 “아 맞아, 맞아. 이 울타리는 옛날 그대로야, 저기 굴뚝도 그 때 굴뚝 그대로 인 것 같아”하면서 연신 휴대폰 인증샷으로 ‘나 여기 왔노라’를 표징하는 모습이 역시 사나이에게 군대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남자들의 세계임을 실감케 한다. 이어 사나이들의 담력과 인내, 전우애가 복합적으로 함축된 부사관학교 유격장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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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훈련장은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 위치했다. 쭉쭉 뻗어 잘 발달된 지방도로를 네비게이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대아저수지’는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대단위 저수지였다. 예전 저수지는 일제시대인 1922년 12월 독일기술진에 의해서 설계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댐이었다고 한다. 이후 절대용수량 부족으로 원래의 댐으로부터 300m의 하류지점에 새로운 댐을 건설, 1989년 12월 준공해 오늘에 이르러 규모만도 길이 255미터에 높이 55미터, 홍수의 총배제수량은 초당 약 952톤에 달한다고 소개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멀리서도 확연하게 보이는 수문(水門)이 예사롭지 않아 저수지 규모가 어떤가를 일깨우며 압도케 했다. 그리고 그곳에 유격교육대 부대간판이 위치했다. 바로 40년 전 대한민국의 육군하사가 되기 위해 교육 받던 군인들이 “000번 이석희 교육생 하강 준비 끝”에 이어 그리운 어머니 “엄마~”나 애인 “영숙아~”를 외치며 외줄을 타고 내려오다 저수지로 풍덩 몸을 던지던 그 곳이었다.
그러나 이미 대아저수지는 세월따라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화 되어있었다. 마치 중국 후난성의 수백여 고봉(高峰)들이 비경(秘境)을 자랑하는 것과도 같이 봉우리와 봉우리가 중첩되고 울울창창(鬱鬱蒼蒼) 뒤덮인 초록과 붉은 단풍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입이 떡 벌어지게 한다. 거기에 저수지 물마저 나뭇잎색깔 그대로 초록빛에 햇살을 받아 눈을 부시게 하니 마치 갓 그물에서 올라와 어창(魚艙)에서 퍼드득 대며 튀어 오르는 제철 물고기의 싱그러움처럼 눈이 시릴 지경이다.
아, 그러나 그 때 그 곳 유격장은?
저수지 전체를 휘돌며 유격훈련 하강 입수지점을 찾고자 했으나 당장 찾지 못했다. 다시 천천히 입구지역으로 오자 ‘오호라’ 거기에 있었다. 유격훈련의 하이라이트 도하 시 밧줄을 묶었던 콘크리트 흔적 잔해가 있었다. 그러자 李 하사 바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래 바로 저기야, 저 곳이 확실해, 지금은 저렇게 산 정상이 잘려져 도로가 되었지만 그 때는 소로 길이었고 저 지점에서 밧줄을 타고 뛰어 내렸어. 조교들에게 혼나가면서 했지”. 흥분된 음성 탓인지 당장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며 옥타브가 높아진다. 표정에서도 무언가 꼭 찾아야 할 소중한 것을 찾아 소원을 이뤘다는 기색이 완연하게 드러나 보인다.
목적달성이라는 안도감이 들어서인지 급격하게 배가 고파진다. 근처 매운탕 집으로 들어가 대아저수지에서 잡아온 잡어들로 매운탕을 시키며 주인아저씨에게 40년 전 유격훈련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반가운 얼굴을 드리며 그 때는 초등학교(초등학교) 5학년이었다며 반색한다. 그러면서 지금은 유격장은 산 뒤쪽으로 있지만 하강훈련은 유원지화 되면서 코스를 산 속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 밧줄이 없어진 것이다.
얼큰한 매운탕에 한모금 술잔으로 늦은 점심을 때운 뒤 세 사람은 커피 한잔을 정성스레 타가지고 한 지점으로 향했다. 전우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훈련 교육생을 기리는 추모비석 앞에서 40년 만에 찾아온 李 하사가 옛 이름 모를 전우를 위해 머리를 숙이며 깊은 회상에 젖어들고 있었다. 코끝을 스치는 산들바람과 짚어가는 봄 내음 속에 뒷산에서는 아름다운 산새들의 속삭임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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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의 멋진 동행. 거기엔 오랜시간 인생을 함께 나눠가는 참다운 친구가 있고, 선 · 후배의 끈끈한 정 이끌림, 그리고 무엇보다 더 큰 ‘남자의 세계’라는 군대 특유의 보따리가 있어 진한 우정으로 승화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숱한 세월이 가도 더 새록해 지는 남자들만의 추억 - 군대. 그래서 군인은, 남자는 추억을 먹고 사는 걸까?
빗기를 머금어 더 싱그럽고 푸르름 가득했던 육군훈련소와 대아저수지 유격장, 그리고 봄 물결이 출렁이던 고창 청보리축제 현장과 풍천 장어의 추억을 함께 나눠준 金 선배님, 李 선배님 즐거웠습니다. 다음 보따리는 어디일까요?(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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