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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식

26일 오전 10시,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려
Written by. 이숙경   입력 : 2018-03-26 오후 1: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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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식」이 26일 오전 10시,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렸다.

 (사)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은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 유족(황은주(외손녀), 안도용(증손자)), 안중근함 부함장 정창식 중령 등 승조원 및 안중근의사숭모회 회원,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 날 행사에는 고마츠 아키오(小松昭夫·76) 인간자연과학연구소 이사장, 도쿄 호세이대학 마키노 에이지(牧野英二) 교수, 가노겐(鹿野元) 변호사, 사가현에 안중근의사 동양평화기원비를 건립한 야마사키 케이코(山綺惠子) 일행 등 30여 명의 일본인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약전 및 최후의 유언 봉독, 참석 내빈의 추모사,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전국 학생 글짓기대회 수상자 시상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은 이 날 추모사를 통해 “안중근 의사는 비록 31년의 짧은 삶을 사셨지만, 암울했던 시절 하얼빈 의거를 통해 국민들의 독립의지를 일깨우고 민족혼이 살아 있음을 세계만방에 알린 우리 민족의 영웅”이라고 밝혔다.

 ▲ 26일 오전 서울 중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안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식에서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인 김황식 전 총리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konas.net

 

 또 “옥중에서의 저술을 통해 동양평화는 물론 세계평화라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주장하신 평화주의자”라면서 “안중근 의사의 고귀한 삶과 사상, 나라사랑 정신을 받들어 슬기롭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지혜를 모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심덕섭 국가보훈차장이 대독한 추모사에서 “안중근 의사는 인재양성의 시급성을 깨달아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해 육영사업에 헌신했을 뿐 아니라 일본 무력에 앞서 의혈전쟁을 실시하고, 중국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해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리셨다”면서 “안 의사님의 위국헌신 정신을 살려 눈부신 나라로 성장하도록 국민들이 마음을 합해 더욱 자랑스런 나라로 만들어 가겠다”며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쳤다.

 안중근 의사(1879. 9. 2.~1910. 3. 26.)는 황해도 신천 출생으로, 1905년 을사늑약 후 중국 상해로 건너 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하다가 부친상을 당하고 돌아와서 사재(私財)를 털어 삼흥학교(三興學校)ㆍ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광무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하여 경흥ㆍ회령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했다.

 그 후 다시 러시아령의 블라디보스톡ㆍ연추(煙秋)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모색하였고, 1909년 봄에는 김기룡(金起龍)ㆍ조응순(趙應順)ㆍ황병길(黃柄吉) 등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을 결성하여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했다.

 1909년 9월,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톡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의거 당일인 10월 26일 9시경,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일본 헌병이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 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하였고,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 평화의 정착을 주장하였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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