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세 번째 북한 방문 이후 베트남에 들러 북한이 베트남의 길을 따르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트남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거침없는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현실을 강조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베트남이 걸어온 길을 모방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전하면서, 김정은이 그런 기회를 잡는다면 ‘기적’은 그의 것이 될 수 있으며, 북한과 북한인들이 이(개방)을 선택한다면 그들과 김정은은 국민의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이모이(쇄신)’로 불리는 베트남식 개혁·개방은 정치적으로 공산당 지배 형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에서 자본을 유치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접목하는 방식이다. 

 1975년 4월 베트남전이 끝난 후 베트남이 직면한 현실은 참담했다. 전후의 황폐함과 거기다 1979년 베트남-캄보디아전쟁과 중-월전쟁으로 매년 수 십만 명의 ‘보트 피플’이 발생하고 사회문제와 자연재해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러자 베트남은 1986년 외국의 직접투자 유치에 적극 나섰다. 1992년에는 헌법과 외국인투자법 개정을 통해 외국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1995년 미국과 수교를 맺고, 1996년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가입했다. 2000년 7월에는 미국과 베트남 간 무역협정이 체결됐고, 그해 11월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베트남은 연평균 7% 가까운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에서 중국과 인도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도이모이 도입 첫해 260억 달러에 불과하던 베트남 GDP는 30여 년이 지난 현재 2000억 달러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란 사실을 실감하기 어렵다.

 이러한 베트남의 개혁·개방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85년 베트남은 베트남전에서 실종된 미군 유해 송환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섰다.

 북한은 지난 4월 2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포하고 대신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을 새로운 전략노선으로 채택했다.

 이날 만장일치로 채택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결정서에는,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ICBM 시험 발사를 중지하고, 또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중국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원회의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하며 환영했다.

 한편 김정은은 남북정상회담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한다면 북한도 베트남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한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지난 6월 미북정상은 새로운 미북관계 수립,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그리고 미군 유해 송환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기대 속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미북정상회담 한 달이 지난 지금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은 제자리 걸음을 하는 등 자칫 용두사미로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6∼7일(한국시간) 3차 방북시 김정은을 만나지도 못했다. 그 시간 김정은은 백두산 인근 삼지연에 있어 트럼프가 준비한 선물조차 전달하지 못했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에서 한 발 물러선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심지어 폼페이오 장관 일행이 6일 오전 평양에 도착했을 때, 미국 대표단이 머무를 숙소를 포함해 자신의 일정을 몇 시간 전에야 알 수 있었다는 것은 고위급회담을 대하는 북한의 고도의 협상술을 엿볼 수 있었다.

 오히려 북한은 회담이 끝난 직후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 측은 싱가포르 수뇌 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 들고나왔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는 또다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의구심을 보이며 더 이상 북한에 속지 말고 미·한 연합훈련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북한에 속아 왔다고 여기는 미국인들에게 북한은 심심풀이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 이솝우화 속의 ‘양치기 소년’과 다를 바 없다.

 북한 당국은 올 가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에 비해, 자신이 유리한 시간표를 갖고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의 시간끌기 전략이 언제까지나 먹혀지지는 않을 것이며, 중요한 것은 북한이 지금의 기회를 놓친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것이다.

 북한에게 개방은 거스릴 수 없는 대세다. 국가의 배급체계는 오래전 무너졌고 주민들은 장마당을 통해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했다. 지금의 북한 경제는 장마당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허용한 공식 시장만 400개가 넘고 종사자 수는 110만 명에 달한다. 북한 당국도 장마당에서 세금을 걷고 있다.

 또 아무리 통제를 강화해도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외부 세계의 소식을 차단할 수는 없다. 북한 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휴대전화는 2018년 현재 500만대에 이른다. 주민 5명당 1대 꼴이다. 거기다 외부문화를 담은 USB, DVD 등이 장마당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김정은에게도 북한체제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경제건설은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러기 위해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가 필요하고 이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필수적이므로 북한은 미북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북한이 다른 나라의 개방모델을 따를지, 또는 독자적인 개방정책을 개발할지는 모르나 북한이 베트남식 경제개방을 따른다면 한국도 북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1992년 한국과 수교한 베트남은 현재 한국의 최대 투자국이다. 한국은 베트남에 2번째로 큰 공적개발원조를 제공하고 있으며 베트남의 2대 교역국이자 최대투자국, 베트남은 한국의 4대 교역국이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최고의 인기 직장은 삼성전자 현지 공장이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확실히 이행한다면 앞으로 개성공단은 베트남의 삼성전자 공장 이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또 베트남은 우리의 새마을운동과 산업인력 양성 과정을 도입하는 등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있다.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은 굶주린 국민을 구제하고 전쟁으로 파탄난 나라를 재건하는 것이 목표였다. 시간이 결코 북한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 비핵화 협상에 임하는 북한 당국의 통 크고 열린 자세가 요구된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