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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동행’(장려상)

Written by. 이동현   입력 : 2019-11-19 오전 9: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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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나의 하루

 나는 성북미르사랑 데이케어센터에서 치매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사회복무요원이다. 처음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공모 소식을 들었을 때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 곳에 크게 내세울 만한 공을 세운 적도 없을뿐더러, 글 쓰는 데는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어르신들을 위한 마음이 내 생각을 바꾸게 했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치매 어르신들을 모시는 센터에서 사회 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라 하면 하나같이 측은한 마음으로 격려를 건네곤 한다. 겪어보지 못한 이들에겐 치매 어르신들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안 좋은지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다. 물론 나 또한 이 센터에서 1년 하고도 5개월 동안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기 전에는 그들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어르신들은 몸이 조금 불편하거나 마음이 조금 아플 뿐이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만큼 나를 아껴주셨다.

 그런 어르신들에게 어떻게든 보답해 드리고 싶었다. 체대 입시 시절 다친 허리를 잡고도 삼수는 안 된다는 의지로 무리한 운동을 지속해서 일까? 망가질 대로 망가진 허리로는 육체적인 도움을 드리긴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은 어르신들의 든든한 손자이자 좋은 친구가 되어 정서적으로 도움을 드리는 것이었다. 또한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는 나의 하루를 소개함을 통해 사회복무요 원뿐만 아니라 우리 치매 어르신들에 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개선하는 데 조그마한 도움이 될까 해서 감히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센터의 붐비는 아침

 이른 아침 센터의 정적을 깨며 울리는 전화, 곧 도착합니다.” 전화를 내려놓고 지하주차장으로 어르신들을 맞으러 간다. 늘 똑같은 미소, 똑같은 말로 아침 인사를 건네면 어르신들은 항상 반가운 미소로 인사를 받아주신다. 센터에 올라와서도 이어지는 어제와 같은 아침. 하지만, 어르신들에겐 새로운 아침이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어제와 같지만 새롭게 시작된다.

 센터의 아침은 신문을 읽는 어르신의 목소리, 허리가 아파 앓는 어르신의 소리,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아침마당 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모여 센터를 붐비게 만든다. 오전 프로그램이 시작하면 붐비던 아침이 잠시 멈춘다. 프로그램에 따라서 둥글게 둘러앉거나, 어르신들 자리에 앉아서 진행한다. 이 시간 나의 업무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오늘은 실버체조 시간. 어깨가 아파 팔이 잘 올라가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동작을 따라 하고자 하는 모습, 본인의 건강한 신체로는 이 정도 쯤이야 가볍게 소화한다고 자랑하듯 큰 동작으로 따라 하시는 모습 그리고 땀까지 흘려가며 열심히 운동하시는 모습까지 모두 카메라에 담는다.

 둥글게 둘러앉아 앞의 강사님을 따라 열심히 하시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보면 귀엽게 보이기까지 한다. 사진을 다 찍고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지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는 한 어르신 옆에 앉는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조용히 손을 잡아주신다. 눈을 보고 웃어드리면 말없이 웃음으로 되받아 주신다. 곧 100세를 바라보시는 할머니의 손이지만 손자를 위하는 할머니의 마음처럼 너무나 따뜻하다. 조용히 손을 내드리고 있자면, 내 손을 더듬거리는 주름진 손등이 보인다. 세월에 주름진 그 손이, 그 웃음이 나에게 ‘내, 이 머리로는 너를 기억하지 못해도 이 손으로, 이 가슴으로 너를 기억하겠노라.’ 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괜히 뭉클해져 주름진 손을 더 꽉 잡아드렸다.

 센터의 여유로운 오후

 오전 프로그램이 끝나면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점심시간에도 우리 할머니들의 ‘손주 사랑’은 계속된다. 지나가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점심은 먹었는지 물어보신다. 늘 똑같이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진심 어린 걱정과 사랑이 느껴져 늘 기분 좋게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힘차게 답해드린다. 몇 번이고 같은 답을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되시는 표정이다. 요즘엔 날이 풀려 기분 좋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근처 개천으로 산책을 나간다. 평소에 늘 지나가던 곳이지만 한 번도 주의 깊게 본적 없는 길을 어르신들과 걸음을 맞춰 걸으니 보이지 않던 꽃이 보이고 풀이 보이고 날아다니는 새들이 보였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 가만히 햇빛을 맞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옆에 계신 어르신도 기분이 너무 좋아 보인다. 센터에서 과묵하시고 잘 웃지도 않던 어르신은 얼굴에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날아가는 새들에게 장난을 치며 신나하신다.

 젊었을 적 성악을 전공하신 어르신은 그 시절 실력 어디 안갔다며 목소리로 아름다운 선율을 그리신다. 센터 앞 5분 거리의 개천에서 산책을 하시며 어린아이같이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르신들은 큰 걸 바라시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손잡고 500m도 안 되는 길을 걷는 것처럼 그리고 옆에 앉아 밝게 웃으며 손을 잡아드리는 것처럼 작은 관심으로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었다. 사실, 마음속으론 알고 있어도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짧은 외출의 아쉬움과 작은 다짐을 가지고 센터로 돌아오면, 늘 밖에 나가고 싶어 하시는 활동적인 여자 어르신의 질문들이 나를 반긴다. “어디 댕겨왔어?”, “저번에 나갔던데 간 거야?” 질문들엔 본인도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간 서운함이 섞여있는 듯하다. 준비된 간식을 드리며 별거 없었다는 듯이 저번에 어르신이랑 다녀온데 다녀왔다고 답해 드린다. 그러면 또 본인 간식을 나에게 건네신다. 서운한 가운데 손자 먹을거는 챙기셔야 하나보다. 할머니들의 ‘손주 먹이기’ 작전은 내가 배가 터져 쓰러질 때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추억의 음악시간

 간식까지 먹고 나면, 오후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음악시간이라 피아노를 준비하고 소고, 리듬 스틱, 핸드 벨 등 학창시절 교실에서도 보기 힘든 악기를 꺼내 놓는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이 악기들을 다룰 수 있을까 했었다. 하지만, 내 의심을 비웃듯 어르신들은 서툴지만 ‘찔레꽃’, ‘번지 없는 주막’ 등 다양한 노래를 연주하셨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일상적인 대화도 거의 불가능하신 한 남자 어르신이 노래를 들으시며 옛 생각이 나셨는지 눈물을 흘리셨다. 놀라운 동시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몸이 불편해도, 당장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안나도 그 시절 노래 몇 마디에 눈물이 나는 똑같은 어르신이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구성진 트로트 가락이 오늘 따라 더욱 슬프게 들렸다.

글을 마치며

 이렇게 어르신들과 웃고 떠들며 지나간 하루를 돌아보면 어르신들 덕분에 내가 좋았던 기억이 더 많다. 어르신들 덕분에 길을 걸으며 주변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배웠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럴 때면, 처음 이곳에 오기 전 치매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죄송스러운지 모른다. 앞서 말했듯이, 다들 치매 어르신이라 하면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인 모습 등 좋지 않은 모습만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겪은 어르신들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본인 감정에 더 솔직하셔서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이었다.

 그 순수하고 인자한 웃음을 보면 따라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화가 많은 어르신도 계시지만, 그것 또한 치매라는 병 때문에 그런 것이지 평소에는 따뜻하게 해주신다. 이 글을 읽는 이도 조금이라도 치매 어르신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 이해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어르신들 요양과 사무 보조를 업무로 이곳에 배정받았다.

 물론 처음에는 치매 어르신들과 생활이 적응하기 힘들고 낯설었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손자처럼 사랑을 받아서 그런지 아침 출근길이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는 것처럼 설레면서도 편안하다. 어르신들의 일생에 비하면 짧은 2년이지만, 함께 있는 동안 나로 인해 참 행복한 2년이 되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작지만 큰 바람을 가지고 매일 아침 20여 분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센터로 간다.

이동현(성북미르사랑데이케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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