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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소음에서 행복을 찾은 이야기’(입선)

Written by. 노선재   입력 : 2019-11-25 오후 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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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특수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장애학생을 돌보는 일에는 희생이 따른다지만 저에겐 그런 마음은 없습니다. 잠깐 번거롭고 불편할지는 몰라도 정성으로 대한다면 그보다 큰 행복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희생이 따르는 쪽은 학생 쪽일지도 모릅니다. ◯◯이는 제가 담당한 반의 학생입니다. ◯◯이도 의사소통의 부재 때문에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이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의 첫 모습은 ‘소음’ 이었습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 점심시간마다 뛰어노는 특수반 아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항상 밝고 착해서 같이 뛰어놀자고 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언제든 다가가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그게 장애인에 대한 첫인상이었습니다. ○○이도 그럴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새학기 출근을 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이는 이상하게 꺾인 손가락, 턱에는 침방울이 흐르고 바닥을 기는 채 있었습니다. 그냥 그럴 뿐이었습니다.

 옆에서 말을 걸어보고 웃어봐도 도통 마음을 열어 주질 않았습니다. 쉽게 친해지기는 커녕 눈만 마주쳐도 저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만치 떨어져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언제나 소리가 나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하루종일 연필깎이를 돌리고 계산기 버튼을 눌러댔습니다. 밥을 떠서 입에 가져다 줄 때도 무언가를 쉬지 않고 두드렸습니다. 결국 시끄럽다고 혼이 났고 손가락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소리를 낼 때마다 제가 못하게 막아야 했습니다. 왜 소리에 집착하는지는 알지 못한 채, 그저 침을 닦아주거나 소음을 말리면서 이번 학기가 끝나는가 싶었습니다.

 ○○이가 내고 싶었던 소리
 음악 시간에 우연히 ○○이가 피아노 앞을 지나 갔습니다. 피아노를 스윽 훑고 잠깐 멈춰 있더니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잘 치지는 못했습니다. 손이 가는 대로 소음이 생겨날 뿐이었습니다. 못치게 하려던 찰나에 ○○이가 제 눈을 바라봤습니다. 눈을 드디어 마주쳐 줬다는 놀라움도 있었지만 너무 즐거워하는 눈동자에 한 순간이 멈춘듯 했습니다. 처음 보는 ○○이의 눈은 분명 즐거워서 반짝이기까지 했습니다. 여태껏 두들긴게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거였나, 너무 강압적으로만 막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들어보니 나름대로 화음을 맞춰서 젓가락 행진곡같이 들을만한 소리가 났습니다. 태어나서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을텐데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문득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이 떠올랐습니다.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등장인물처럼 피아노를 잘 치는건 아니지만 건반을 누를 때마다 ○○이가 짓는 표정은 영화의 몇 배나 더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날 이후로 안쓰는 피아노를 물어물어 교실로 하나 가져왔습니다. 피아노를 옮겨오는 저를 ○○이가 신기한 듯이 쳐다봤습니다. 연주하는 ○○이는 언제나 음악실에서의 눈동자를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 옆에 앉아 무언가 더 해주고 싶어서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었습니다. ○○이는 클래식 연주곡을 틀 때면 피아니스트처럼 건반에 고개를 떨구고 심각한 표정으로 집중합니다. 직접 연주하는 걸로 아는 걸까요. 특히 가장 좋아하는 동요가 나올 때면 숨조차 멈추고 노래를 감상합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한번 진짜로 쳐보면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치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서 월급을 받자마자 집에 피아노부터 샀습니다. 피아노라곤 초등학생 때 몇 달 쳐본 게 전부지만 그 기억을 총동원해서 쉬운 동요부터 연습하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손을 포개어 잡고 ‘구슬비’를 알려줬을 때 ○○이는 저를 안아주었습니다. 누구나 따라할 만큼 쉬운 노래가 아닌데 이제 앞부분 조금 정도는 혼자서도 치는 게 대견하기만 합니다.

 ○○이 집에서도 깜짝 놀라 전화하신 적도 있습니다. 내가 피아노를 잘 못치더라도 마음과 정성만 있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전보다 자신감도 붙은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학교에서 같이 피아노를 치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소집해제를 하고도 꾸준히 봉사하러 오는 선임 형이 있는데 저도 선임 형처럼 매주 나와서 ○○이와 연주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음악 시간의 피아노 사건을 그냥 매일 나는 소음이라고 여겨 지나갔다면 이런 일은 절로 없었을 겁니다. 1초도 안되는 시간동안 눈을 마주보고 여기까지 왔다는 게 신기합니다. 이후부터는 ○○이의 아주 작은 표현도 주의 깊게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피아노로 하는 대화
 ○○이는 점점 저에게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피아노 연주는 물론이고 요새는 점심시간마다 트램펄린을 타러 가자고 제 손을 잡아끌기도 합니다. 심심하면 학교 카페나 정원을 산책하는 등 같이 다닌 곳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아졌습니다. 그중에서 블루베리 농장에 견학을 가서 같이 열매를 따 먹은 일, 떡케이크를 만들다 쌀가루를 쏟아서 한바탕 웃은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에는 눈도 안 마주쳐주다가 이제는 종종 웃으며 배꼽인사도 해주는데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합니다. 둘이 워낙에 딱 붙어서 다니다 보니 어떤 선생님께서는 저를 ‘○○이 형아’라고 부릅니다. 기분 좋은 별명입니다. 말과 글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잘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배운 값진 경험입니다.

 ○○이는 말도 잘 못하고 연필도 못 쥐지만 저와 대화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를 피아노를 치는 방식으로 알려줍니다. 한번은 음악수업이 끝나고 교실로 가는 중에 ○○이가 갑자기 멈춰서는 침을 닦으며 벽에다 피아노를 쳤습니다. 조금 생각해 보다가 음악실에 손수건을 두고 왔냐고 물어 보니 맞다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을 연 만큼 ○○이가 감정을 솔직하게 알려줬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가끔 창가에서 초록색 화분에 핀 흰 꽃을 가만히 바라보곤 합니다. 학기 초엔 싹만 겨우 트다가 어느새 다 피워낸 꽃이 자기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꽃의 이름을 ‘행복’이라고 지어줬습니다.
 
소음에서 소리, 대화까지
 처음에는 장애인이 원한다면 무조건적으로 도와줘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먼저 물어보고 먼저 다가가 도와주었습니다.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라면 때로는 도움이 필요 없다고도 하겠지만 사실 ○○이처럼 말을 못하는 경우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아이가 진짜 하고 싶은걸 억누른 셈이 되었습니다. 도움이라는 게 이렇게 어설프기 쉬운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작은 표현에 귀 기울여주고 감정을 내 감정처럼 생각해 본다면 말입니다.

 처음 ○○이의 행동을 그냥 모르고 넘겼을 때는 아무 쓸모없는 소음이었습니다. 왜 그러는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은 채 있는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이젠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아무 쓸모없는 소음에서 피아노의 건반이라는 표현을 잡아냈을 때 비로소 소음은 소리가 되었습니다. 말을 못하는 ○○이에게 이 소리는 유일한 목소리였습니다.

 ○○이가 목소리를 낼 때마다 그 의도와 감정을 읽으려 해보니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말을 못하는 아이와 대화를 해보려 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꼭 말과 글이 아니더라도 소통할 수단은 많다는 걸 다시 상기시키는 고마운 경험이었습니다. 도움을 준다고 다가갈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도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도움이란 웅크려있는 아이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는 게 아닐까요?

노선재(춘천동원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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