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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특별한 자리’(입선)

Written by. 김하연   입력 : 2019-11-25 오후 3: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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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내가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게 된 곳은 춘천에 있는 강원도 장애인 종합복지관이다. 그리고 이곳에 왔을 때 2주간 경험한 곳은 자립지원팀의 주간보호소이다. 주간보호소는 성인 장애인 분들이 낮시간 동안 이곳에서 두 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내 주변에는 장애인이 있었기에 나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나름 없었다고 생각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 직전만 해도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었기에 일을 빨리 배우기 위해서 종이에 이용인들의 이름과 성격 등을 적고 외우는 등 정말 열심히 복무하려 했다.

 그리고 나는 예정대로 원래 근무하게 될 상담사례지원팀으로 이동을 했다. 상담사례지원팀에는 청소년과 어린이 위주의 프로그램이 전부였다. 나는 싫지 않았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학생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적응을 금방했다. 그중엔 꿈드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꿈드림은 단체 체육활동을 통해서 신체 능력도 향상하면서 집단생활에 적응하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꿈드림 1, 2는 각각 초등학교 저학년, 고학년이 있고 꿈드림3은 다른 팀의 사회복무요원이 맡아서 했다. 그 후 상담사례팀에선 6개월을 복무했고 기관내에서 재배치가 되었다. 자립지원팀 주간보호소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꿈드림 아이들을 다시 못 볼줄 알았다. 그런데 한 요원이 소집해제를 해서 꿈드림3 프로그램은 공석이 되었다. 원래는 시설 담당 요원이 꿈드림3을 맡도록 되어있는데 상담사례팀 측에서 내가 맡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며 꿈드림3을 겸해서 맡게 된 것이다.

 총 7명의 중학생이 있었고 다들 개성 넘치고 재미있는 학생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이는 지체장애가 조금 있는 편이었다. 조금 산만했고 근육도 발달이 덜 되었고 발음도 명확하진 않아 의사소통이 확실하지 않지만 항상 밝게 웃고 긍정적인 아이였다.

 하루는 ○○이가 수업 도중에 체육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에게 선생님 말씀에 집중해야 하니까 딴 짓을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장난을 치면서 이런저런 말을 하며 얼버무렸고 내가 다가갔고 ○○이가 실수로 내 팔을 한 대 때리게 되었다. 실수라기엔 감정과 힘이 좀 실려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지금 뭐 하는 거니?”라고 물었고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이는 인상을 쓰면서 더 세게 때렸다. 황당한 표정으로 나는 ○○이를 바라봤고 그 사이 그 아이는 자기 잘못을 이해했는지 체육관 반대편으로 도망을 갔다.

 체육활동이 재개되었고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 기분 때문이었을까 그날따라 ○○이의 기분과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끝났다. 체육선생님에게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이는 인사하자마자 밖으로 도망을 갔다. 나는 ○○이의 행동에 대해서 부모님께 직접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이는 이미 차에 올라타서 이동 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이런 일이 있으면 보통은 내가 직접 나서는게 아니라 담당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감정적이 되어서 이야기도 못하고 있었다. 수업 이후 선생님께 이야기를 잘 드렸고 그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렇게 다음 주가 되었고 그 아이도 출석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사를 하고 활동하는 것을 보고 조금은 허탈했다. 물론 시간이 흐른 만큼 나도 기억은 많이 희석되었고 그 부분에 별생각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주. ○○이는 나오질 않았다. 그 날 오후 알게된 사실은 ○○이가 집에서 쓰러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런 증상이 있었다고 했지만 그 날은 쓰러지고 일어나지를 못했고 병원에 가보니 뇌졸중이라 했다.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라고 하여 몇몇 선생님들과 같이 병원에 찾아갔다.

 잠들어 있는 ○○이를 보니 정말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기도도 해줬다. 집에 가서도 기도를 했다. 2주 정도 시간이 흐르고 복지관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들었다. 중환자실에 있던 ○○이가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것이다. 나는 상담사례 지원팀에서 주간보호소로 이동을 했기에 소식을 직접 듣지는 못하고 건너 건너로 우연히 듣게 되었다. 얼른 장례식에 가봐야 겠다는 생각에 퇴근 후 차를 타고 빨리 가봤다. 다행히 많이 늦지는 않았다.

 막상 가보니까 어떻게 조문을 해야 할지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여러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이용인의 부모님들을 만났다. ○○이 부모님의 요청으로 조의금은 받지 않는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이의 부모님이 계셨다. 조문 후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나를 보는 ○○이 어머니께서는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아마도 서로 초면이고 나 혼자 찾아가서 모르셨나 보다. 나는 사회복무요원이고 ○○이가 하는 프로그램에 같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이 어머니께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이 몫까지 다른 아이들 잘 돌봐주세요”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뒤로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바쁜 일이 있어 금방 나왔다. ○○이에게 보여준 마지막 내 모습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많이 미안했다. 그리고 후회됐다. 하지만 시간은 무심히 계속 흘러만 갔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요원 배치가 조금 바뀌면서 꿈드림3은 다른 요원의 몫이 되었다. 주간보호소와 꿈드림을 같이 하다 보니 몸도 정신도 매우 피곤한 2개월을 보냈었다. 하지만 복지관에 근무하면서 ○○이를 만난 것은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가졌던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생각은 군대보다 편하거나 쉬울거란 것이었다. 아마 다른 사회인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한 현장은 그렇지가 않았다. 감사하게도 사회복무요원을 했기에 복지관을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군생활하고는 또 다른 삶의 교훈이라 생각을 한다.

 다사다난한 1년 6개월이 지난 2019년 지금, 나는 여전히 주간보호소에서 근무 중이다. 나는 13명의 이용인, 4명의 선생님과 같이 지낸다. 이용인의 반절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지만 각각의 모습 속에 서로 다른 ○○이를 바라본다. 순수한 그분들을 보면 나도 즐거워진다. 웃으면서 다닌다. 몸이 힘들지만 마음은 즐겁다. ○○이와 지냈던 날들을 생각하며, ○○이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마 소집해제까지 이 자리를 지키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난 지금의 여기가 좋다.

김하연(강원도 장애인종합복지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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