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㉘ 진주지구전승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남진을 계속하던 그 해 7월 29일 미25사단 킨 기동부대는 경남 진주지구에 쳐들어온 북한군 6사단, 9사단과 전투를 벌였다.
당시 호남 일대를 점령한 북한군 제6사단 및 제9사단은 진주지구로 진격해왔고, 미 제25사단 킨특수임무부대도 진주 서방에서 적을 맞아 연일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이 때 피아 쟁탈전은 열세 번에 이를 정도로 가열되었다.
대구 침공에 실패한 적은 마산을 점령하여 서쪽으로부터 부산에 진출하려는 의도로 8월 31일 밤 전면적인 대공세를 취했다. ‘피의 협곡’, ‘포병의 무덤’이라 불릴 만큼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낸 치열한 전투 끝에 8일 동안 전선을 지켜내면서 아군이 총반격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킨 특수임무부대로 구성된 미 제25사단의 사활의 건 방어전투로 북한군의 부산 진출을 저지하고 진주 동쪽 지역에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으며, 이로써 낙동강선 방어에 성공한 유엔군은 전력을 회복하여 총반격을 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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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구 전승비는 이 때 참전한 미 제25사단의 전승을 기리기 위해 육군 1206건설공병단이 1958년 7월 10일 건립한 기념비다.
전승비 비문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남강은 논개의 옛 사적으로 더불어 빛나고 진양은 이제 자유 수호의, 신의 꽃다운 전적으로 새롭도다. 호남 일대를 유린한 북한군 제 6, 9사단은 단기 4283년 7월 29일 진주지구에 진출하여 왔으므로 미 제25사단을 기간으로 편성된 ‘킨’ 기동부대는 진주 서방에서 이를 맞아 연일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특히 서북능선을 둘러싸고 전개된 피아의 쟁탈전은 열세 번을 거듭하도록 가열하였으니 대구 침공에 실패한 적은 마산을 점령하여 서쪽으로부터 부산에 진출하려는 새 기도 밑에 8월 31일 밤 전반적인 대공세를 취하여 왔다. 촌토를 다투는 격전 속에 일진일퇴를 거듭하기 8일간을 계속하여 현 전선을 고수한 결과 총반격의 계기를 조성하고 국련군 승리의 원인을 이루었다. 이 영웅적인 수훈을 높이 찬양하고자 이 돌을 세워 영원히 후세에 전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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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구 전승비가 위치한 진주성은 1592년 10월 임진왜란에서 김시민 장군이 2만의 왜군에 맞선 장소다. 또한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의 역사를 안고 있으며, 1950년 6월 25일 전쟁 당시 미 제25사단이 북한군과의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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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정신이 깃든 진주성이 있었기에 우리가 우리의 나라임을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과 독립운동, 그리고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피흘리며 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고귀한 넋을 기리고 기억하는 곳, 진주성.
남강이 유유히 흐르듯 이어온 호국보훈의 역사를 되새기며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넋을 마음 속 깊이 기리며 그 치열했던 호국영웅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자.(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박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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