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56) 쥴 장루이 소령상
총 대신 의무 가방을 둘러멘 프랑스 의무대장의 발자취를 찾아서
필자는 현재 대학원생으로 제1기 향군대학생인턴기자이면서 대구지역고등학교에 군 특성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 졸업후 육군에서 복무 중인 졸업생들의 추수지도(追隨指導)를 위해서 7기동군단이 있는 장호원에서 출발하여 육군과학화훈련단이 있는 인제로 가던 중에 홍천군 두촌면 44번 국도변에 있는 현충시설인 쥴 장루이 소령 기념공원을 탐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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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 장루이 소령 기념공원은 한국전쟁 당시 파병된 프랑스군 의무대장으로 먼 타국에서 전쟁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용감하게 전장을 누볐던 프랑스부대의 군의관을 추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다. 가을 단풍이 저물고 갈색 잎이 무성한 겨울 초입, 속초로 향하는 44번 국도변 길목에 있는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 55번지에는 70여 년 전 먼 이국땅에서 전장을 누비다 명예롭게 세상을 떠난 프랑스 군의관 쥴 장루이 소령(Jules Jean-Louis)을 기억하는 추모 동상이 설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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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 장루이 소령 동상은 지뢰 폭발로 전사한 곳에서 가까운 곳, 홍천으로부터 북동쪽으로 20km 떨어진 지점에 1986년 한불수교 100주년과 쥴 장루이 소령 산화 35주기인 1986년 10월 25일 당시 전사한 날에 꽃부리 모양을 한 받침돌 위에 건립되었다.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에 깨끗하게 관리된 그의 동상은 늠름한 모습으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총 대신 의무 가방을 둘러멘 모습이 이채롭다.
쥴 장루이 소령은 1917년 프랑스 남부도시 앙시베시에서 출생하였다. 1933년 프랑스 육군보건대학 시험에 합격하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1939~1940년 전투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1946~1947년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복무한 후 유엔군 프랑스대대에 합류했다. 1950년 11월 26일 프랑스군 수석군의관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부임하였다. 그는 프랑스대대 의무대장으로 남성리전투, 지평리 전투, 1037고지 전투를 포함해 한국전의 많은 전투에 참여했다. 특히 1037고지는 프랑스대대가 4번째 군단 표창을 받은 전투이기도 했다. 이동병원 의무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부상병 치료와 대민진료를 했다.
중공군 5월공세가 인제, 현리, 홍천, 가평지역에서 진행되던 1951년 홍천군 두촌면 자은3리 외후동에 주둔하면서 주민들의 질병 치료에 앞장서 숭고한 인도주의 정신을 펼쳤다. 1951년 5월 8일 인근 마을 환자를 치료하고 프랑스대대로 돌아오던 길에 지뢰를 밟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한국군 5사단 소속 장병 2명을 발견했다. 미군 지뢰제거팀의 도착이 늦어지자 그는 심각한 출혈로 생사를 오가는 부상자를 직접 구조하러 갔다. 그러던 중 지뢰를 밟아 다리 한쪽을 잃고 얼굴에 부상을 당했다. 부상 후 그는 "한국군 두 명을 잘 치료해 주시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34세 꽃다운 나이로 눈을 감는다.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한국군을 치료하며 소명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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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기, 태극기, 프랑스국기가 나란히 나부낀다. 자유·평등·박애 프랑스 삼색기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한국전쟁 당시 지뢰밭에 고립된 한국군을 구하다 34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한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먼 타국에서 전쟁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용감하게 전장을 누볐던 프랑스의 군의관 쥴 장루이 소령을 추념해 본다.
쥴 장루이 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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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 장루이 소령을 추념하며』
프랑스 청년의 뜨겁고 숭고한 삶의 궤적
진정한 군인이 되고 싶었던 34년의 짧은 삶을 마감한
쥴 장루이의 생애
그들은 그를 살아 있는 성인이라 불렀다.
삶과 죽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 교차하는
이 험난한 전쟁터에서
쥴 장루이는 우리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11년간 총 대신 의약 가방을 메고 전쟁터를 전전하며 살아온 시간
“전우들을 두고 나만 갈 수는 없다. 그들을 치료해 주어야 한다.”
“돌봐야 할 부상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 혼자 어떻게 철수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제 그는 안식처를 찾아 떠난다.
70여 년 전 그가 짧은 생을 불태우고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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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년 전 그가 짧은 생을 불태우고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과연 무엇인가?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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