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66) 해병대군산·장항·이리지구 전적비
8월 삼복더위 숨을 헐떡이며 군산 월명공원내에 위치한 해병대군산·장항·이리지구 전적비에 다녀왔다. 왼편으로는 월명공원 산책로가 잘 정돈되어 있어 공원 나들이객들에게 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쉼터 등도 잘 갖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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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적비는 6.25전쟁을 맞아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 해병대가 그 예하 고길훈 부대(대대규모)를 군산, 장항, 이리지구 전투에 최초 출전시켜 서해안의 젖줄인 금강을 지키기 위한 혈전에서 적을 격파한 최초의 전투이다.
1950년 7월초 천안을 점령한 북괴군 제6사단 13연대는 서해안을 우회, 파죽지세로 호남지역으로 진출하여 왔으나 해병대 고길훈 부대는 동년 7월 13일 해군함정 FS(재천호) 편으로 제주기지를 출항, 7월 16일 군산에 상륙, 금강을 도하하여 장항북방 4km 지점에서 대대규모의 적에게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 북괴의 금강선 진출을 저지 격파하였고, 적에게 전율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 이후 고길훈 부대는 7월 20일까지 금강을 방패 삼아 군산시를 방어, 격렬한 시가전을 전개하면서, 해군 군사 경비부 육전대와 함께 LST-810함에 정부미 13,000가마와 중요한 정부물자 반출작전을 수행한 후, 명령에 의거 고길훈 부대의 주력은 해상으로 철수하고, 이리 방면으로 출동한 해병 제3중대는 육군 독립대대, 경찰과 더불어 밀려드는 적과 결사적인 항전을 통하여 적의 남하를 효과적으로 지연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전투에서 해병대는 적사살 62명, 사상 311명, 포로 5명의 대전과를 획득하였으며, 전사 36명, 부상 31명, 해방불명 8명의 손실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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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는 6·25동란을 맞아 한국해병대가 처녀출전하였던 곳. 북괴의 남침으로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호국충정의 일념으로 뭉쳐진 우리 해병들이 남단 제주기지로부터 용약 출전하여 백절불굴의 해병혼으로 적과 맞서 싸웠던 이곳 군산·이리·장항지구 전투는 그 이후 6·25의 격전장 속에서 상승불패의 해병 전통을 수힙하게 하였던 최초의 전투가 되었다.
이 최초의 전투에서 적을 격멸할 수 있었던 거슨 해병대 창설의 주역으로 몸바쳤던 선배 해병들의 피땀 어린 훈련과 이를 통해 얻어진 해병정신의 결과였으며, 이 전투는 곧 이 나라 해병들이 귀신잡는 해병, 무적 해병의 신화를 창조 계승해 나갈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
여기 살신보국의 충정으로 산화하신 고귀한 선배 해병들의 영령을 기리며 그들의 호국 의지는 군산·장항·이리지구의 시민은 물론 우리 온 겨레와 함께 길이 살아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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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최초 전투를 계기로 필승의 신념과 자신감을 얻은 한국 해병대는 그 이후 낙동강 전선의 통영 상륙작전에서 [귀신잡는 해병]의 신화를 창조하면서 9월 15일 한.미 해병대가 선두로 한반도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하면서 이곳 군산지역에 양동 작전을 실시하였으며 국군과 유엔군이 총 반격전에 나서 패주하는 적을 무찌르고 한맺힌 금강을 다시 찾고 북진을 개시,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여기 이 전투에서 상승불패의 해병대 전통을 창조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해병대 (고길훈부대)의 공적을 영원히 기념코자 1990년 12월 1일 해병대사령부에서 이 비를 세운다.
이처럼 해병하면 [귀신잡는 해병]으로 유명한데 이 말이 바로 이 전투를 시발로 낙동강전선의 전투, 인천상륙작전 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귀신잡는 해병이란 신화를 창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뜻깊은 날이었다. (konas)
향군 대학생 기자 양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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