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86) 해병대 가리산 전투 전적비
가리산 입구 주차장에는 6.25전쟁 당시 홍천지구 가리산 전투에 참여하여 주요 고지인 가리산을 확보하는데 기여한 국군 해병대와 해병대 소속 참전 군인들의 공훈을 추모하기 위한 ‘해병대 가리산 전투 전적비’가 서 있고, 가리산 정상에는 해병대 가리산 전투를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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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과 유엔군은 오산-원주 선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저지하고 1951년 2월 하순에 반격을 개시하여 3월 14일에 수도 서울을 재 수복하고, 중부전선에서는 홍천을 점령한 뒤 38도선을 돌파하기 위해 북진 중에 있었다.
국군 해병대 제1연대에 부여된 임무는 유엔군 제9군단 미 해병대 제1사단에 작전 배속되어 홍천지구 일대에서 가장 험준한 가리산을 공격, 탈환함으로서 군군과 유엔군이 북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가리산은 춘천-홍천-인제를 잇는 삼각형의 중간에 위치한 1,051 고지로 이 고지를 탈취하면 춘천과 인제를 감시할 수 있는 전술적 요충지로써, 당시 가리산 일대에는 북괴군 제6사단 1,500여명이 방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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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제1연대는 1951년 3월 19일부터 3월 25일까지 7일 동안 치열한 주·야간 공격을 통하여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 작전 시 미 제9군단 진격의 걸림돌인 가리산을 점령함으로써, 중부전선 돌파구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이 전투에서 해병대 제1연대는 적 사살 121명, 포로 39명, 다발총 26정, 장총 8정, BAR 2정, M1 5정의 전과를 올린 반면 전사 31명, 부상 91명, 실종 2명의 피해를 당했다.
가리산 전투에서 전사한 31명(상황판 전사자명비 32명)의 국군 해병대 용사들의 명복을 빌며 잠시 고개를 숙여 호국용사의 넋을 위로해본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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