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하늘 바람 별과 시인’ 윤동주 生家를 찾아
11월3일은 학생운동의 날이다. 학생들이 들고 일어섰다. 일제 불의에 항거하고 독립에의 의지를 굽히지 않게 했던 광주학생들에 의해 촉발된 의기(義氣)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929년 11월1일 광주-나주 간 통학열차에서 발생한 일본 학생들의 조선인 여학생 희롱사건이 계기다.
11월3일 광주학생운동은 해방후인 1945년 11월18일 신의주학생의거로까지 이어졌으니 이는 북한주민의 반공의식(反共意識)을 대변한 것이며, 1919년의 3·1운동, 1926년의 6·10만세사건, 1929년의 광주학생운동 등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한국 학생들의 민족적 의기(義氣)와 애국심의 발로이기도 했다.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던 해 나이 열두살로 만주 명동촌에서 소학교를 다니며 후일 일제에 투옥돼 옥사한 고종사촌 문인 송몽규 등과 잡지 <새명동>을 발간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주인공 윤동주 시인 생가를 찾았다.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바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견주어 노래한 시인이다.
윤동주(1917.12-1945.2). 그는 학생시절(연희전문)부터 문필을 통해 민족혼을 일깨운 거성(巨星)이었다. 28세에 요절한 민족 시인으로 암울했던 시기 민족의 설움과 울분을 씻고 일제에 항거하며 해방과 독립 의지를 일깨웠지만 정작 자신은 해방의 기쁨을 표현하기도 전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죄목은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 수호 선동죄였다.
8월 중순 중국 연해주 용정시 개산툰(용정에서 동남쪽, 두만강 사이로 함북 온성과 접) 지역은 끝을 알 수 없는 옥수수 밭이랑이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 볕을 받아 튼실하게 여물어가는 중이었다. 개산툰은 과거 여진족들이 살던 땅으로 4군6진을 개척한 세종대왕 대 조선 강토였다. 당시 침탈을 일삼던 여진족을 토벌하기 위해 진(陣)을 구축하던 김종서 장군과 여진족 부족과의 전투. 그 와중에서 싹튼 여진족 처녀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배긴 개산툰진을 돌아보고 난 뒤 나는 윤동주 생가를 향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부끄러워했다....<중략>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옥중에서 일본군 생체실험의 희생양이 됐을 것으로 그의 사망원인을 추측하는 원인불상으로 요절한 비극적 삶이었음에도 우리민족의 자랑이요 민족정기를 크게 불러일으킨 애국시인. 그의 생가는 출생지 명동촌에 위치해 있다.
윤동주 생가는 잘 정비돼 있었다. 이 지역 공산당에서도 윤동주 시인에 대해 각별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동행한 연변과학기술대의 한 지인이 설명해준다. 그것은 생가 입구 거대한 바위 표지석에 새겨진 ‘윤동주 생가’ 알림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표지석이 설치되기 전에는 나무 말목에 간단히 표시를 했지만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단다.
그만큼 시인의 위상이 어떤가를 알려주는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연변 조선족 자치주 공산당은 윤 시인을 조선족으로 만들어놓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의 소중한 우리 인물과 역사 문화유산들이 알게 모르게 변색 왜곡돼가고 있음에 자칫 이렇게 가다간 오래지 않아 그도 중국화, 한족화 되지 않을까 우려됨은 필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생가는 부모님 고향 함경북도에서 가져온 나무와 기와 등 자재들로 지어졌다. 기와지붕에 규모 있게 지어진 집은 그의 집안이 어렵지 않았음을 엿보게 한다. 시를 통한 시인의 민족애, 구국의 기치는 만주지역에서의 교육을 통한 민족의 깨우침, 독립운동에 앞장선 외삼촌 규암 김약연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시’가 새겨진 시비(詩碑) 앞에 서서 목청을 가다듬자 어느새 주변인들의 요청에 의해 시 낭송자로 탈바꿈하니 생가 방문을 통해 또 다른 추억으로 아로새겨짐에 뜻을 담아본다.
나라 잃은 힘없는 백성으로 태어나(1917. 용정 명동촌) 문학을 통해 민족의 설움과 아픔을 노래하며 일제에 항거한 대표적 저항시인인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돼 일제의 고문을 받다 해방 6개월을 앞둔 1945년 옥중에서 불귀(不歸)의 객이 되고 말았다.
필자는 윤동주 시비 앞에 서서 그가 남긴 주옥같은 시를 음미하며 빼앗긴 나라의 민족으로 그가 겪어야 했을 울분과 뼈저린 고뇌, 마음의 고통을 새삼 돌아보면서 한 순간 시인과의 짧은 만남의 시간이었음에도 벅찬 무게감을 담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11월, 온산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였던 색색의 단풍도 이젠 낙엽 되어 발밑을 서걱거리게 하고 도로변을 울창하게 수놓았던 플라타너스 잎새와 은행잎도 바람결에 흩날리며 폼잡던 자태들을 무너뜨리며 또 다른 계절을 대비하려 한다.
푸르른 산새를 자랑하던 울창한 산림도 머지않아 뼈대만 남은 모습으로 변모해 다음을 준비하는 건 자연의 순리요, 섭리다. 새 옷은 언젠가 헌옷으로 헤지고, 곱고 아름답던 젊음도 시일의 흐름에 따라 늙고 쇠약해짐은 불변하는 진리다. 세계를 재패했던 정복국가들이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흥망성쇠(興亡盛衰)도 반복됨을 알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탄생하고 멸하며 흥(興)하고 망(亡)함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나’와 전체로서의 ‘우리’가 어떻게 변화 발전하고 유린되며 착취를 당했는가 하는 점이다. 개인으로서의 스스로가 수분(守分)을 알고, 전체가 반복된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세종조의 태평성대는 계속 되었을 것이며,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지도, 그랬다면 처참하게 당한 36년의 쓰라림도, 11월3일 광주학생운동도,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유랑민족으로 전락도, 일본군 생체실험을 당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힘 있는 개인이나 국가는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흥하게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아픔과 고통을 곱씹을 수밖에 없음을.
11월9일은 1919년 만주 길림성에서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이 조직된 날이다. 또 17일은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압하여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 등이 이뤄진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이며 치욕의 이 날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제정된 순국선열의 날이기도 하다. 카이로선언(11.27)일도 있다. 그 뿐인가. 23일은 애숭이 북한 김정은 집단으로부터 연평도 포격을 당한 날이다.
잊지 말자. 잊어선 안 된다. 정부와 국민 각자가 우리들 마음속에 심어야 할 과거 사실과 그 역사적 교훈을. (Konas)
이현오(칼럼리스트, 수필가. 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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