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一流)와 이류(二流)
독일의 문호 Goethe는 지혜를 지닌 스승으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존경의 대상입니다. Napoleon도 그를 존경했다고 하고 철학자 Schopenhauer, Nietzsche도 심지어 혁명가 Karl Marx, Vladimir Lenin도 그를 흠모했다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왜? Goethe에게는 ‘삶의 지혜’가 풍성했기 때문에.
그는 우리에게 무엇이 ‘일류’이고 무엇이 ‘이류’인가, 그것을 분별하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러준 셈입니다. 그럴 수 있기 위하여 사람에게는 광범위한 그리고 깊이 있는 교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일류’라고 하면 우리는 우선 ‘일류대학’이란 말을 연상하게 되는데 ‘일류대학’은 경쟁이 하도 심해서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이라는 고정관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대학에는 당대의 ‘수재들’만이 들어가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타고난 재능은 보통이거나 때로는 보통 이하이지만 고2, 고3 때 밤늦게까지 유명한 사설 학원들을 찾아다니고 비싼 특별 과외 덕분에 이른바 ‘일류대학’에 턱걸이 하여 간신히 입학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정말 ‘수재’나 ‘천재’로 태어난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기 어렵고, 설사 들어간다 하여도 학업을 다 마치고 졸업장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예는 우리들 주변에도 흔히 있습니다. 아들은 음악대학에 가고 싶다는데 아버지는 반대입니다. “이 놈아, 음악을 해서 밥 못 먹어. 이공대학에 가라. 애비 말대로 안 하면 등록금 못 대준다.” 옛날엔 그런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지금도 아들‧딸에게 ‘일류대학’ 입학을 강요하는 잘못된 부모가 없지 않습니다. 그런 부모는 혹시 아이들의 타고난 천재적 소질을 밟아 버리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오래 살다 보면 이웃에 사는 사람들 중에 누가 ‘일류’고 누가 ‘이류’인지 분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판단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일일이 설명은 못하지만 ‘감’은 잡힙니다. 그것도 일종의 예술(art)입니다. 번번이 사람을 잘못 보고 죽을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귀농(歸農)하여 채소밭이나 가꾸는 게 좋겠다”고 일러 줍니다.
‘일류’가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마세요. 대학이 문제가 아니고, 집안이 문제가 아닙니다. 스스로 ‘일류’가 되어 ‘일류들’과 사귀면서 ‘일류답게’ 살다 가세요. 여기서 오래 살 생각은 하지 마시고!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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