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민주주의의 파괴자인가 건설자인가’
“박정희 정부에서 나타난 권위적 성격과 유신체제의 반민주적 혹은 부정적 측면은 그 자체로 비판받고 극복되어야 할 사안이지 그것이 박정희시대 전체를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은 어느 나라에서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발전과 성숙과정의 시행착오와 과잉행위인 것일 뿐이지, 박정희시대 및 체제 자체가 부정되거나 ‘독재’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6일 월간조선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근대화의 국부 박정희를 다시 본다’ 박정희시민강좌에서 강연자로 나선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은 박정희시대의 민주주의를 이같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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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민주주의의 파괴자인가 건설자인가’를 주제로 열린 제5회 강좌에서 김광동 원장은 근대정치사와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밝히면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본질은 ‘추상적 혹은 구호적 민주주의’를 넘어, 구체적으로 봉건주의와 군국주의 및 전체주의와의 대결과 극복이라는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면, 신분제의 극복, 여성의 사회참여, 직업선택의 자유와 정치적 정당경쟁구조의 확립 등은 물론이고, 공산전체주의와의 대결과 극복 같은 다차원적 측면에서 조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김 원장은 “늦어진 근대와 식민체제에 이은 국민주권주의적 민주공화제를 출범시킨 1948년 체제의 민주주의 혁명적 성격이 확립될 때 한국 민주주의의 연속적 성격과 이승만 및 박정희 정부 등에 대한 정치사적 평가도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이어 “민주주의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민주주의를 못할 나라가 없고, 다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변국 비교와 함께, 몇백년전부터 근대화와 민주주의 경험을 쌓아온 영, 미, 네덜란드 등보다 늦어졌고, 늦게 출발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제산업적으로 한국이 낮은 수준에 있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고 인정되며 비교되어야 한다. 오히려 뒤늦게, 악조건에서 주변국과 차원이 다른 민주체제와 번영체제를 만든 것이 평가되어야 한다”며 “그것이 역사적, 객관적, 균형적 평가”라고 말했다.
또한, 김 원장은 “1987년 체제의 민주주의 공고화란 박정희시대가 만든 업적의 산물이자 그 토대 위에 조성된 것"이라며 "1987년 전후의 민주주의 성숙은 지속적 경제성장에 따른 사회 전반의 성숙과 정치적 성숙의 필요의 반영이자, 연속적 계승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지 1987년 이전체제의 실패에 대한 부정과 청산일 수가 없다”며 “나아가 1987년 체제는 국제적 수준의 냉전 완화-공산주의의 변화와 체제위협의 감소의 산물은 물론이고, 전체주의 북한에 대한 확고한 우위에 대한 확신과 안정화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원장은 “그런 면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싸우면서 건설’한 결과”라며 “싸웠다는 것은 봉건, 식민, 공산체제와 싸운 것이고, 건설했다는 것은 시행착오적 자유민주건설, 근대산업화와 개방적 성장으로 이룬 ‘자유선택’ 체제이다. 그것은 공산제국주의 극복과 건국 민주주의의 혁명성, 그리고 자유선택이 가능한 시장경제와 산업발전으로 만든 민주주의 발전과정이다. 그 결과가 바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나 경제산업발전, 혹은 공산주의 극복에 있어서 세계사의 이정표를 만들고 모델국가를 만들 수 있었던 근간”이라고 설명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조갑제 대표는 “1973년 1월 12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고도성장을 지속해나가기 위해서는 중화학공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해 나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10월 유신으로 조직된 국력을 중화학공업에 집중시킴으로써 방위산업을 건설함은 물론 수출의 확충을 기한다는 것이었다. 유신 시기와 겹치는 중화학 건설시대가 시작된 것”이라며 “이것이 성공함으로써 한국은 중량급 국가로 바뀌고 민주화의 기반을 착실하게 놓게 된다. 국력의 조직화, 능률의 극대화로 중화학공업 건설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치제도가 한국적 민주주의였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황성준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박정희시대는 그동안 산업화 측면에선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나, 민주화 측면에선 부정돼 왔다"고 박정희에 대한 양면성을 고찰하고는 "그러나 이러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절적 혹은 분절적으로 보는 시각은 극복돼야 한다”며 “박정희시대는 이승만시대의 자유민주주의 건국혁명을 계승‧완성하기 위한 국민국가 건설 시대였으며, 그 결과로 창출된 ‘시민’으로 인해 그 체제가 더욱 성숙‧발전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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