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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군 2019 국토대장정 소감문②]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던 6박7일’

Written by. 김동열   입력 : 2019-11-18 오후 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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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대학교 법학부 1년 김동열
 
지원 동기 / 출발 준비
대학입학 후 첫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에 빠져 있던 지난 5월, 부모님께서 재향군인회에서 주최하는 국토대장정 참가를 추천하셨고 양구 전방에서 소대장하는 형의 조언이 있었다. 처음에는 낯가림이 있는 내가 6박7일씩이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무더운 여름에 걸을 것을 생각하니 그리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낯선 사람들과도 만나며 다양한 경험을 해 보는 것이 오히려 더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 지원을 했다. 6월 5일, 제12회 향군 국토대장정 참가 대원으로 선발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기왕에 가게 됐으니 활발하게 활동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6월24일, 서울 서초구 양재역 1번 출구를 나와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의실로 갔다. 향군 국토대장정을 주최하는 향군에서 제공해준 배낭과 물품을 받았는데 배낭, 모자, 조끼, 티셔츠 등 종류의 다양함과 우의까지 챙긴 꼼꼼함에 놀랐다.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께 ‘향군’하고 거수경례를 하니 웃음바다가 됐다. 집을 1주일씩이나 떠난다는 생각에 여벌의 많은 옷을 챙겨갔다. 그런데 이것이 나중에 걸을 때 배낭이 무거워서 후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일차

드디어 향군 국토대장정 출정일 아침이 밝았다. 국토대장정을 태어나서 처음 가보기 때문에 아침에 긴장을 많이 했다. 집에서 한 시간쯤 전철을 타고 9시쯤 모임장소인 장충체육관에 도착해서 6.25 정부행사를 참관했다. 식전행사에서 모듬 북 공연과 의장대 시범을 보게 됐는데 굉장했다. 정말 피나는 연습을 했을 것이라고 상상이 되는 멋진 공연이었다. 그 후 본 행사가 시작되어 애국가 제창을 4절까지 했는데 2절부터는 가사를 보면서 불러야 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이 됐다. 6.25전쟁에 참전하여 우리나라를 구한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행사기간에만 갖는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본받고자 다짐하며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정신고가 끝나고 현충원에 갔다. 대전 현충원은 중학교 때 묘비 닦기 봉사하러 몇 번 가 보았지만 서울 현충원은 처음이었다. 국토대장정 대원의 한사람으로 가게 된 서울 현충원은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순국선열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현충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옆에 있었던 대원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마음이 한층 편안해 졌다. 다음은 공군 제10전비에서 전투기에 탑승하여 개인사진을 촬영하고 천안함 기념관에 갔다. 천안함 사건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46명의 용사들의 추모공간에서 유품들을 보니 가슴이 아련해 지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46명의 용사가 순직한 천안함 사건은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되며 그 다짐으로 나라를 튼튼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숙영지인 해병대 2사단으로 이동했다. 해병대 2사단에서 준비해주신 저녁을 먹고 식기를 깨끗하게 세척을 했다. 내가 사용한 식판을 다른 병사들도 사용한다고 생각하니 더 정성껏 닦게 되었다. 숙소에서 조원들과 처음으로 오랜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날에 어색했던 것과는 다르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빨리 친하게 됐다. 이렇게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누웠는데 눕자마자 바로 잠드는 마법같은 일이 벌어졌다. 

2일차

첫 일정으로 평화전망대를 갔다. 북한군이 불과 2KM 전방에 있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안개가 많이 끼어서 전망을 선명하게 볼 수 없음이 많이 아쉬웠다. 밖에 나와서 조별 단체 사진을 찍고 버스를 타고 해병 2사단 상장대대로 이동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언제 걷기 시작하지...이제는 걷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해병대 상장대대에서 전차의 포격소리를 들었는데 정말 귀가 뻥 뚫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다음 일정에 따라 백마고지 전적지로 가게 됐다. 강원도 철원에 있는 백마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6.25 전쟁 때 국군과 중공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그때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 보면 마치 백마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을 해서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을 들으니 그때 전투가 상당히 치열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제 드디어 걷기를 시작했다. 4km정도를 걷고 노동당사에 도착하게 되었다. 노동당사는 옛 조선노동당의 철원군 당사 건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땅에서 북한이 건축한 건물을 보게 되어 신기했다. 그리고 두번째 날 밤을 보내게 될 숙소인 6사단 신병교육대에 도착하였다. 입소한지 며칠 안되는 신병들이기 때문에 그 분들에게 불편함을 줄 까봐 최대한 다 같이 조심히 다녔다. 저녁 식사 후에는 6일차 밤에 있을 전야제를 준비했다. 조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어떤 장르를 하고 어떤 곡을 선정할지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최종결정은 다음 날 하기로 하고 잠들었는데 피곤했는지 바로 잠들었다.

 3일차

첫 일정은 월정리역 답사였다. 월정리역에는 간단히 설명 듣고 사진 찍고 바로 떠나게 되었다. 2일차까지 견학 위주였다면 이제 3일차부터는 진짜로 도보 위주로 일정이 진행됐다. 1시간20분을 걸어서 승리 전망대에 도착했다. 승리전망대는 경사가 급하다보니까 걷는데 체력 소모를 많이 하게 되었다. 승리 전망대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국가안보상 사진촬영 제한구역이 많았다.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쉬웠다. 또 다시 1시간을 걷어서 15사단 수색 대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많이 걷고 나서 점심을 먹으니 정말 밥이 너무 맛있게 느껴졌다. 거기에 반찬이 내가 좋아하는 치킨이어서 금방 다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PX구경을 했다. 물품 가격이 상당히 저렴했다. 집에 슬리퍼를 놓고 와서 슬리퍼를 하나 사고 싶었지만 사이즈가 맞는 것이 없어서 어쩔 수없이 그냥 나왔다. 15사단 수색대대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에 대원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주셨다. 정말 걷느라 힘들었는데 아이스크림을 먹으니까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15사단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1시간 30분 정도 걸어야 했는데 경사가 정말 가파르고 날씨도 습해서 땀을 많이 흘렸는데 재향군인회에서 물을 많이 챙겨주신 덕분에 수분을 섭취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금성지구전투적비에 도착하였다. 그 곳은 한국전쟁에서 마지막으로 대규모 전투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순국선열의 그날의 뜨거운 함성이 들리는 듯한 여운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전야제 준비를 했다. 전야제 때 우리가 부르기로 한 곡은 싸이의 ‘챔피언’이다. 2명이 노래를 부르고 5명이서 춤을 추기로 했다. 춤 연습이 끝나고 치킨을 먹으면서 조원들과 대화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날은 내가 처음으로 불침번 근무를 경험해 보았다. 새벽 4시부터 5시까지 제일 애매한 시간이었다. 소등하자마자 바로 눈을 감고 잠에 들었는데 4시는 금방 왔다. 한 시간 동안 불침번을 서다가 5시에 다음 불침번에게 근무를 넘겨 준 다음 한 시간이라도 자려고 눈을 감았다.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4일차

벌써 4일차가 되었다. 첫 번째 일정은 화천대교를 지나서 파로호 안보 전시관에 가는 것이었다. 2시간 30분정도 걸었는데 아침부터 기온이 높아서 정말 덥고 땀을 많이 흘렸다. 경사가 급해서 중도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조 대원들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걷는 모습을 보고 계속 걷기로 마음먹었다. 파로호 안보전시관에 도착해서 간단히 설명을 듣고 시원한 실내에서 쉬었다. 이때 정들었던 조원 중 한 명이 개인사정으로 인해서 도중에 하차하게 되었다. 매일 버스에서 옆에 같이 앉고 숙소에서 대화를 많이 했던 의대에 다니던 형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집에 가게 되니 정말 슬펐다. 그 후 1시간 30분을 걸어서 딴산유원지에 도착했다. 

점심식사는 전투식량이었는데 초등학교 때 견학 가서 먹은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먹게 되었다. 이 날 많이 걸어서 그랬는지 전투식량 또한 너무 맛있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 계곡에 들어 갈 시간을 주었지만 예비 신발을 갖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계곡에 들어가지는 않고 대신 차가운 물로 등목을 했다. 마치 고등학교 체육시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렇게 2시간 정도를 다시 걸어서 7사단 신병교육대로 가게 되었다. 이 날 정말 많이 걸었던 까닭에 저녁을 먹자마자 샤워를 했다. 땀을 정말 많이 흘려서 찝찝했지만 씻고 나니 너무 개운했다. 많이 걸어서 발에 물집이 잡힌 대원들도 많았다. 그 후 저녁에 안보교육을 들었다. 대한민국의 장점에 대한 강의를 듣고 우리나라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고 자부심도 생긴 것 같았다. 안보교육이 끝나고 또다시 전야제 준비를 했다. 4일차는 많이 걸었기 때문에 춤 연습은 힘들어 영상시청으로 대체했다. 이날 역시도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 날 야식은 피자였다. 맛있게 피자를 나눠 먹고 방으로 들어가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5일차

아침 배식 당번은 우리 조였다. 부대 마다 배식 당번이 하는 일의 양은 복불복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조는 양이 많고 정리가 어려운 조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아침 메뉴는 죽과 군대리아 햄버거, 시리얼이었다. 시리얼이다 보니까 우유가 잔반 처리통 주위에 많이 묻어 있었다. 우유를 치우는데 냄새가 장난이 아니게 지독했다. 그리고 죽이 담겼던 큰 밥통 까지 설거지했는데 죽이 너무 안 떨어져서 빡빡 문질러서 겨우 설거지를 마무리 하고 부랴부랴 출발을 했다. 그렇게 아침부터 힘을 쓰고 버스를 타고 안동철교를 지나 평화의댐으로 가게 되었다. 평화의 댐으로 가는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다. 산 정상에 가까웠기 때문에 ‘야호~~’하고 소리내 보았는데 메아리가 진짜로 되돌아와서 신기했다. 평화의 댐으로 가는 길은 계단이 많아 올라 가는게 쉽지 않았지만 이제 걷는 것이 익숙해진 나였기 때문에 초반보다는 덜 힘들었다. 평화의 댐에서 평화의 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오천 터널을 이동하게 되었는데 터널 안을 걷는 것은 처음이고 앞으로도 걸어 볼 기회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

1시간 30분 정도 걸어서 오미리 마을로 이동하게 됐다. 점심은 오미리 마을 주민분들이 준비해 주신 비빔밥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평소에 비빔밥을 즐겨 먹지 않지만 여기서는 비빔밥 또한 맛있었다. 여기 오니까 편식이 사라진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다가 버스 1호차 vs 2호차 족구 시합을 했다. 우리팀이 1세트는 이겼고 2세트는 졌다. 세트 스코어 1:1 인 시점에서 내가 3세트에 뛰게 되었다. 11점 내기였는데 11:5 의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우리 2호차가 최종승리를 하게 되었다. 박현미 부단장님께서 족구를 잘한다고 칭찬해주셔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했듯이 한마디 칭찬이 지친 내게 용기와 힘을 주신 것 같다. 오미리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고 바로 21사단 신병교육대로 2시간정도 걸어서 이동하게 되었다. 둘째날에 내가 ‘이제는 걷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이제는 ‘그만 걷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꿋꿋하게 견뎌내고 21사단 신병교육대에 도착했다. 식사를 하고 다음날 전야제를 위해 마지막 준비를 했다. 나는 춤 담당인데 몸치라서 연습하하면서 고생을 했다. 이렇게 5일차 밤도 저물어 갔다.

6일차

다음날이면 벌써 해단식을 하고 집으로 가게 된다. 정들었는데 벌써 헤어질 생각을 하니까 너무 아쉬웠었다. 6일차 첫 일정은 백골 병단 전적비로 가는 것이었다. 전야제때 남자대원 대표로 소감문 발표자로 선택 되었다. 소극적이고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어떻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해야 했고 내 느낌 그대로의 소감문을 작성했다. 소감문을 작성하다보니까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설레임도 있었다. 어느덧 백골병단 전적비에 도착했다. 백골 병단 전적비에서는 조광식 부단장님께서 직접 설명해 주셨다. 인제는 조광식 부단장님께서 예전에 근무하셨던 동네라고 하셨다. 설명해 주신 내용중에 백골병단이 한국최초의 유격부대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다음은 통일전망대에 갔었는데 이곳은 중학교 때 가족여행의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고 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통일 전망대에서 설명을 들으면서 모니터 화면으로 북한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았는데 ‘우~와’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고 화면으로 보던 장면을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현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717OP를 가게 되었고 717OP에서도 초소를 지키고 있는 북한군을 볼 수 있었고 금강산 가는 길 또한 보았다. 시간 관계상 DMZ박물관은 가지 못하고 바로 낙산해변으로 향했다. 올 해 처음으로 바닷가 모래를 밟게 되었다. 낙산해변에서 바닷바람을 쐬고 8군단 오산 휴양소로 이동해서 전야제가 시작되었다. 소감문 발표순서가 왔을 때 떨리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잘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끝나게 되었다. 끝내고 나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한 것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순서에 따라 재향군인회 김진호 회장님의 힘든 여정을 이겨낸 우리들을 격려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마치 많이 만난 할아버지와 같이 우리들을 아끼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훈화말씀이 끝나고 조별 장기자랑을 했는데 우리조가 제일 먼저 경연을 펼치게 되었다. 준비한대로 그냥 무대를 즐겼다. 싸이 노래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호응을 잘 해줘서 기대했던 것 보다 더 잘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조들의 장기자랑을 보았는데 준비시간이 짧았음에도 모두들 무대 질이 높아서 놀랐고 덕분에 즐거운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전야제를 끝내고 다 같이 사진 촬영을 하고 나서 숙소에서 헤어짐이 아쉬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마지막 날

안 올 것 만 같았던 7일차 마지막 날이 되었다. 8군단에서 9시30분부터 해단식 연습을 하고 10시부터 재향군인회 김진호 회장님께서 주관하신 해단식이 시작되었다. 해단식 이후에 수료증을 받고 마지막으로 다 같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강남 고속터미널에 도착해서 짐을 챙기고 다 같이 작별인사를 하니까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뒤풀이 갈 대원들은 따로 가고 나와 같이 뒤풀이 가지 않는 대원들은 바로 집으로 향했다. 마음은 뒤풀이에 가고도 싶었지만 체력적으로 한계가 와서 집으로 가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니까 집이 낯설기도 하고 여운이 남았었다. 그렇게 6박7일 동안의 재향군인회 국토 대장정은 마무리가 되었다.

국토대장정 그 후...
국토대장정이 끝나고 집에 돌아 온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아있다. 6박7일 동안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먼저 이런 국토대장정 기획해주신 재향군인회에 매우 감사드린다. 국토대장정 내내 고생하시면서 우리 안전을 위해 노심초사하신 김종국 단장님과 조광식,박현미 부단장님께도 너무 감사드리고 무더운 날 고생을 많이 하신 스태프 분들께 이 지면에서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사실 처음 접하는 대학생활과 처음 배우는 전공 때문에 적응하느라 1학기 내내 힘들었다. 그래서 걸으면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었다. 덕분에 2학기 때는 보다 더 발전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중도 포기하고 싶어도 꾹 참고 단 한 번도 열외하지 않고 걷고 또 걸으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제12회 향군 국토대장정에 함께한 대원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비록 짧은 6박7일간의 시간이지만 하루 종일 같이 지내다 보니까 같은 조원들과 대원들과도 많이 정이 들었다. 꾸준히 안부 전하고 연락하면서 지내고 싶다. 처음에는 갈지 안 갈지 많이 고민했었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 정도를 넘어서 비슷한 다른 과정은 없는가 하고 찾아보는 변화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많이 놀랐다. 스무 살은 무엇인가를 하기에 정말 젊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계속해서 살 것이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국토대장정에 꼭 한번 참가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향군 국토대장정 6박7일은 6.25전쟁 참전용사들, 천안함 46명의 호국영웅들, 지금도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는 국군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 국토대장정 참가를 계기로 계속해서 우리나라 안보에 대해서 공부하고 관심을 가질 계획이다. 끝으로 제13회 국토대장정에 더 많은 젊은 대학생들이 참가하여 이 좋은 경험을 많이 하기를 추천한다.
예비소집 때 배운 경례구호를 하며 소감문을 마무리 하고 싶다.
향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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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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