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91)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청양리에 있는 쉬리공원내에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가 있다.
저격능선은 오성산(五聖山, 1062m)에서 남쪽 남대천(南大川) 방면으로 뻗은 능선으로 김화읍 북동쪽에 있다. 저격능선은 지형상 위치로 볼 때 김화, 철원, 평강의 이른바 철의 삼각지대 안에 있어 적으로서는 최후의 거점인 동시에 아군의 주 저항선에 접근할 수 있는 주요 지점이다.
1951년 10월 김화읍 북방으로 진격해간 미 제25사단 병력이 이 능선에서 총격을 가해온 중공군 저격병에 큰 피해를 입으면서 이러한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상감령 고개 동쪽의 538고지에서 북쪽으로 뻗어 있는데, 낙타의 등 모양으로 솟은 두 개의 봉우리(A고지와 Y고지)를 정점으로 좁고 험한 지형을 이루며 능선이 이어지고 있어서 많은 병력이 주둔하거나 이동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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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능선 전투는 전선이 교착되었던 1952년 중부 전선의 김화 지역에 배치되었던 국군 제2사단이 중공군 제15군과 맞서 오성산과 마주 보는 주저항선 전방의 전초 진지를 빼앗기 위해 공방전을 벌인 전투이다.
김화 북방 7㎞ 지점에 있는 저격능선 전투에서는 10월 14일부터 11월 24일까지 42일간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국군 제2사단은 1개 연대 규모인 4,830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으며, 중공군은 1만4,857명 사상자가 발생하는 병력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승리해 저격능선을 장악하면서 국군은 김화에서 옛 금성군 지역인 철원군 원동면과 임남면 지역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성산 남쪽 기슭에 전초진지를 확보해 중국군을 위협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으며, 4개 사단 규모의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킨 중공군을 패퇴시키면서 유엔군이 휴전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는 6·25전쟁 당시 김화 저격능선(현 오성산 우측능선) 전투를 기념하기 위하여 1958년 3월 15일 육군 제5군단(당시 군단장 김종오)에서 건립한 전투기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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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능선 전투 전적비는 콘크리트 석축으로 만들어진 대석 위에 화강암 자연석 비가 세워져 있다. 탑신은 높이가 3m, 둘레가 2m이고, 기단은 높이가 1.8m, 둘레가 20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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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에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狙擊稜線戰鬪戰績碑)’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보병 제3사단 육장균 준장의 비문과 시공자, 준공자, 후원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전적비 좌.우측에는 대포가 전시되어 있었고, 앞쪽에는 전적비 안내문과 바람개비가 설치되어 있어 바람이 부는날에는 바람개비 돌아가는 그 소리가 더욱더 서글피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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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능선 전투와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 최대 격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두 전투에서 승리하여 현재의 철원과 김화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는 큰 전과를 올린 치열한 전투를 되새기고 한국군의 애국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가 있는 쉬리공원은 물놀이장, 야영장, 둘레길, 징검다리, 쉼터 등이 마련되어 있어 많은 방문객들로 붐비고, 해마다 한여름에는 철원화강다슬기축제가 열려 외부 관광객들도 많이 찾고 있다.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를 찾은 날도 매서운 바람의 겨울날씨 임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눈썰매를 타고 있었다.
잠깐의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며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를 찾아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국군장병들에게 고개숙여 감사함을 전해본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양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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