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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군 2019 국토대장정 소감문⑥] “캠프파이어는 꺼졌어도, 국토대장정 대원들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Written by. 김승현   입력 : 2019-11-19 오전 11: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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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1학년 김승현

일지 형식으로 썼습니다. 제가 느낀점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그리고 글을 예쁘게 못씁니다. 다소 투박하고 거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번 대장정을 통해 평생 잊지 못할 추억 남기게 해주신 단장님, 부단장님 그리고 모든 대원께 감사드립니다.

6. 24(O. T) .ot날. 양재로 가서 조원들과의 첫 만남.
경민이 형이 자신이 rotc 생도로서 합숙 경험도 많고, 나이도 가장 많으니 조장을 맡아 보겠다고 했다. 다들 동의했다. 보통 조별활동을 해보면,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곤란한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일이 없어서 시작이 좋다고 느꼈다. 보급품을 받았다. 조끼, 모자, 배낭 등을 보고 나니 내일부터 입고 활동할 생각에 두근거렸다. 기수로 선발되어, 장충체육관으로 이동하여 예행연습을 했다. 꽤 힘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단장님의 지시를 잘 못 알아듣고 헷갈려 했을땐, 너무 부끄러워서 어디 숨어버리고 싶었다. 예행연습이 끝나고 스태프들과 단장님, 부단장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집에 가서 빠진 짐이 없나 확인한 후에 잠에 들었다.

6. 25(1일차) . 장충체육관에서 6.25정부행사가 끝난 후 발대식을 가졌다.
6월 25일에 출발하는 것은 아주 뜻깊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엄숙하게, 국토대장정의 시작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국립현충원으로 이동해 참배하고, 해군2함대에서는 천안함 참배를 했다. 적나라했다. 어뢰에 맞아 찢기고, 뚫리고, 부서진 선체는 정말 끔찍했다. 설명해주시는 분께 질문했다. “우리 군의 대응은 어땠습니까?” 북에 정식으로 항의하고, 유엔 안보리에 상정하여 결의안이 채택되었다고 설명해주셨다. 답답했다. 어뢰 폭침은 분명한 선전포고 아닌가. 왜 우리는 물리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을까. 후에, 하나 더 질문했다. “유족들에 대한 보상은 얼마나 되었습니까?” 군인 신분이다 보니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하셨다. 생명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너무 적은 금액이다. 천안함이 찢긴 만큼, 마음도 찢긴 듯 했다. 부대로 이동하여 자기소개 시간을 갖고 조별로 시간을 잠깐 가진 다음 취침했다.

6. 26(2일차) . 6시 기상은 힘들었다.
근래 몇 개월간 이렇게 일찍 일어나 본 적이 없다. ‘국군도수체조’란 걸 처음 해봤다. 초등학교 때 해봤던 국민체조와 비슷하지만 약간 달랐다. 근육 곳곳이 깨어나는 듯 했다. 강화 통일전망대를 방문했다. 어렸을 때 태권도장에서 견학을 와본 적이 있다. 늠름한 해병대 장교분이 북측 지역에 대해 브리핑해 주셨다. 이곳에서 가장 가깝게는 1.8km만 가면 북한이고, 바다의 60%가 갯벌이 되기도 한다는 점. 그래서인지 귀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했다. 선전용으로 지어놓은 아파트, 그럴듯한 시설들 사이 곳곳에 포문이 숨어 있었다. 무서웠다. 너무 가까워서 무서웠다. 이곳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해병들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계하고 있었다. 불철주야 고생하는 군인들이 정말 감사했다. 도시에서 느낄 수 없던 감정이었다. 해병대 상장대대로 이동하여, 수륙양용장갑차의 시연을 관람했다. 소리가 엄청나게 컸다. 다들 아이처럼 눈 동그랗게 뜨고 시연을 지켜보았다. 우리 조 송경민이는 3초마다 우아 우와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그렇게 안 생겼는데 귀여웠다. 특히 군사관련 진로를 생각하는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경험일 거라고 생각했다.

백마고지 전적비로 이동해서 관련 설명을 들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저 고지들을 지키기 위해, 셀 수 없는 장병들이 희생되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노동당사로 걸어 이동했다. 많이 걷지는 않았지만 힘들었다. 걸어오는 길에 목장이 많았다. 축사의 분뇨냄새가 정말 참기 힘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왜 걷지 않느냐’고 툴툴거리던 친구들은 입이 쏙 들어갔다. 노동당사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촬영장소로 이전에 알고 있었다. 건물 외벽은 무수한 총알자국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38선 이북이었던 이곳 철원은 사회주의의 잔해들을 묵묵히 간직하고 있었다. 기념촬영을 하고, 부대로 이동했다. 아 맞다. 전날 내가 모포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아 조장 경민이 형이 곤혹을 치렀다. 정말 미안했다.

6. 27(3일차)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포 정리하는 법을 배웠다.
6시 기상은 여전히 힘들지만, 내무반 취침은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매트도 푹신푹신하고 모포도 부드럽고 두께도 적당하다. 그리고 식사가 생각보다 너무 맛있다. 알고 보니 우리 대원들 식사는 부대에서 조금 더 신경을 써주는 부분도 있었다. 우리가 메론 받을 때, 장병들은 감자를 먹고 있었다는 다른 대원들의 제보. 장병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현재는 운영되지 않는 월정리역에 들러서 역시 브리핑을 듣고 기념촬영을 했다. 승리전망대로 이동했다. 호국안보국장님께서 격려차 방문해 주셨다. 이곳에서 사단장을 역임하셨다고 한다. 장병의 브리핑에 추가로 이곳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2km, 북쪽으로 2km에 형성되었던 남방, 북방 한계선. 북한이 먼저 철책을 앞당겼고, 우리도 이에 대응해 앞당겼다고 한다.

용환이랑 500원 넣고 망원경으로 철책 너머를 관찰했다. 전망대 바로 밑에 고라니 한 마리를 봤다! 신기했고, 반가웠고, 예뻤다. 망원경 너머로 북한 초소의 큰 인공기도 보였다. 이곳은 한반도에서 가장 긴장을 늦출 수 없고, 살벌한 지역이다. 그러나 비무장 지대는 정말 푸르렀다. 그리고 고요했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든다. 이걸 아이러니라고 하던가... 15사단 수색대대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가졌다. 너무 천천히 먹어서 박 부단장님께 꾸중을 들었다. 제일 빠르게 행동해야할 기수가 제일 늦으면 어떻게 하냐고 하셨다. 그치만 너무너무 맛있었다. 조 부단장님께서 이곳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이곳에서 근무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일전에 미군이 사용하던 부대라고 한다. 듣고보니 이국적인 건물 양식이기는 하다. 그런데 너무 낡았다. 지금은 쓰지 않는 버려진 시설도 있는 것 같고. 외국에서 지은거라 타 부대에 비해 현대화가 늦는 거라고 알려주셨다. 지금은 엄청 푸근하게 생긴 아버지 같은 느낌이시지만 그때는 무서운 군인이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걸어서 금성지구전투전적비를 방문해 브리핑을 듣고 묵념했다. 민간인은 쉽게 올 수 없는 민통선 내 구역이다. 소중한 기회에 감사하고, 이곳을 목숨바쳐 지켜주신 군인들께 감사했다. 15사 신교대로 이동했다. 조금 덜어냈지만, 일주일치 짐을 메고 걷는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맨 앞에서 기수로 걸으면서, 바로 뒤 대원들의 대화를 듣곤 한다. “내가 그냥 걷는건 진짜 좋아하는데, 이건 너무 힘들어.” “기수들은 맨앞에서 편하겠다.” “너무 빨라∼ ” 가끔 욱하기도 했지만, 그저 걸었다. 멀리서 트럼펫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했는데 군악대가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고 하셨다. 군악대의 연주는 힘찼다. 신교대에 들어서자 이곳 장병 분들께서 마중 나와 박수쳐 주셨다. 자기 일도 아닌데 진심이 느껴지는 박수를 쳐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저녁에 대원들에게 치킨이 제공되었다! 이 외딴 곳까지 치킨이 배달된다는 것이 우선 신기했다. 조별로 치킨을 먹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나는 조원들과 많이 소통하지 못했었다. 사진 찍을 때나 모이는 정도. 맛있는 치킨을 먹으니, 기분도 좋아지고 우리 조원들과 가까워졌다. 조장 경민이 형은 용인대 rotc 학군 후보생이고, 이름이 같은 조원 경민이는 우석대학교에서 군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현진 누나는 대만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고, 지은이는 고등학교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했고 진영이와 민이도 풋풋한 대학 새내기였다. 상헌이는 아마 레슬링 선수였던 것 같다. 몸만 봐도 범상치 않다. 근육질에 가슴도 엄청나게 크다. 게다가 잘생겼다. 행사기간 동안 티는 안냈지만 이 친구의 팬이 되었다.

6. 28(4일차) .오늘은 엄마 생신이다.
같이 있어드리지 못해 아침부터 죄송하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앞으로 설거지 빨래도 모른 척 않고 잘 할게요. 양말도 똑바로 벗어 놓을게요.사랑해요. 엄마!

화천시내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내일 토요일까지 행군이 힘들다고 들었다, 오늘도 그저 걸어보자. 북한강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보통 카메라에 담으면 그 감동이 다 느껴지지 않기 마련인데, 사진으로 보아도 벅찰 정도였다. 걷고, 또 걷고 걷다가 파로호 안보 전시관을 방문했다. 해설사 분께서 설명을 정말 잘해주셨다. 그 중 기억에 남는건 이 명칭에 대한 최근 논란이었다. ‘파로호’라는 명칭은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내렸다. 그런데 중국에서 ‘오랑캐’라는 표현을 굉장히 불편해 한다고 한다. ‘진정한 승자는 침묵을 지킨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행군에 나섰다. 낙오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점점 지쳐갔다. 너무 느리게 걸어도 안 된다. 깃발이 무겁진 않아도 신경 쓰인다. 발바닥이 뜨겁다. 등은 땀으로 축축하다. 다들 말수가 적어진다. 버티고 버텨서 딴산 유원지에 도착했다. 정말 힘들었다. 점심으로 전투식량이 나왔다. 조리방법이 신기했다. 그러나 맛은, 전투할 때에만 먹어야 할 듯하다. 나는 그저 그랬다.

식사 후에 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놀이를 즐겼다. 물이 깨끗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다들 정말 즐거워했다. 젖은 몸을 말리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오늘의 숙영지인 7사단 신교대로 향했다. 개인정비 후 조별로 모임을 가진 뒤, 취침했다. 이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침번을 서봤다. 새벽 2시에서 3시까지 1시간 동안 복도에서 혼자 있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은 정말 고요했다.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심심했다. 복도 불침번용 의자 옆에 책장에 책들이 있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책을 한 권 골라 읽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다. 머리말을 읽으니 시간이 벌써 다 되었다. 3시에 경민이를 깨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6. 29(5일차) .벌써 5일차다!
국군도수체조도 이제 몸에 밴 것 같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행군에 나섰다. 이날 오전은 제일 힘들었다. 각오는 했지만, 상상 그 이상이었다. 끝없는 오르막길이 내 한계를 시험하는 듯 했다. 너무 힘들 때마다 뒤를 돌아봤다. 80여 명의 대원들이 함께 묵묵히 걷고 있었다. 대원들의 체력에 감탄하고 전우애 비슷한걸 느끼며, 그저 걸었다. 평화의 댐을 방문했다. 여기도 오르막이 힘들었다. 정말 웅장했다. 크기에 압도되는 기분은 롯데타워 이후 오랜만인 것 같다. 우리 국민이 모금해서 완공했다고 한다. 오미리 마을로 내려와, 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다. 계란은 두 개나 넣어서. 밥을 먹고 1호차 vs 2호차 족구대결도 하고 한시간 가량 쉬었다. 21사단 신교대까지 또 걸었다. 도착해서 내일 있을 조별 장기자랑 무대를 계획하고 취침했다.

6. 30(6일차) .물집 잡힌 친구들이 정말 많은데, 오늘 많이 걷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수 정빈이가 물집이 잡혀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제까지 잘 버텨줬다. 오전에 백골병단전적비에 들러 브리핑을 듣고 참배했다. 고성 통일 전망대로 이동했다.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서해와는 다른, 깊은 동해바다였다. 멍했다. 울컥하기도 했다. 첫날 강화도 군부대에서 잤던 게 정말 어제 같은데, 이 여정이 끝나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이날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다. 717op로 이동했다. 절대 쉽게 방문할 수 없는 곳이다. 저 너머로는 금강산 자락과,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지는 연못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정찰 교대 중인 북한군 5명을 확대해서 봤다. 웃기지만 살아있는 북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엄청 떨렸고 신기했다. 낙산사로 이동해 걸었다. 낙산해수욕장에서 휴식을 취했다. 모두 사진을 찍고 가볍게 물을 적시며 추억을 쌓았다. 이제 정말 거의 다왔다.

8군단에 들려 저녁식사를 하고, 마지막 숙영지인 오산휴양소로 향했다. 마지막 밤, 전야제가 시작되었다. 시원한 해변 바로 옆에 무대가 설치되고, 행사 mc가 오셨다. 향군 회장님 및 귀빈들도 참석하셨다. 격려 말씀 후 건배한 후, 우리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우리 조는 ‘6조를 이겨라’라는 레크리에이션 무대를 준비했다. ‘춤, 노래로 일관된 기존 장기자랑 개념에서 탈피해보자’ 라는 취지였으나, 전문 레크리에이션 mc가 계신 상황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미숙했고, 호응도가 부족하기는 했으나, 나름 우리끼리는 즐겼다.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맛있는 즉석 바비큐와 시원한 생맥주와 파도소리, 지는 해가 전야제를 무르익게 했다. 캠프파이어가 사그라들어도, 대원들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7. 01(7일차) . 이제는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는 사람들.
정이 많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8군단 사령부에서 해단식을 했다. 김진호 회장님의 마지막 교육을 들었다. 이번 대장정의 목적을 되새길 수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대원들과 서울로 와서 헤어지게 되었다. 지금 와보니, 우리 모든 대원들, 앞으로 날 잡지 않는 이상 정말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각자 전국 각지에 흩어져 각자의 일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왔다. 선크림을 정말 열심히 발랐지만 피부는 많이도 탔다. 그러나 마음에 든다. 더 건강해 보인다. 지내온 이번 일주일이 정말 꿈만 같다. 내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일상의 걱정없이, 새로운 사람들과, 멋진 경험으로 꽉 찬 일주일이었는데... 공허한 기분도 든다. 그래도 내일은 내일대로 충실히, 묵묵히 하루를 보내야겠지. 아무리 힘들어도 묵묵히 걸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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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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